[여의춘추-한민수] ‘rB>C’와 공동체 파괴자들 기사의 사진
10개월 만에 책장에서 그 책을 다시 꺼냈다. ‘인류의 기원’. 이상희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인류학과 교수가 집필한 것으로, 지난해 9월 발간되자마자 푹 빠져 읽었던 책이다. 12장 ‘너와 나를 잇는 끈, 협력’을 재차 정독했다. 왜 사람은 나의 이익을 포기하고 타인을 돕는 걸까. 전 재산은 물론 목숨까지 내놓는 이유는 무엇인가를 다룬다. 인류의 이타적인 행위를 설명하는 흥미로운 ‘공식’ 하나가 나온다.

‘rB>C’. 수혜자가 받는 이익(Benefit)과 수여자와 수혜자 간 촌수(relation)를 곱한 값이 수여자가 치르는 대가(Cost)보다 클 때 이타적 행위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저명한 생물학자 윌리엄 해밀턴의 ‘해밀턴 법칙’이다. 해밀턴은 이를 토대로 “내가 죽는 대신 형제 두 명, 혹은 사촌 여덟 명을 살릴 수 있다면 유전자 입장에서 결코 밑지는 죽음은 아니다”고 했다.

하지만 이 교수는 인간사회가 핏줄로 연결될 수 있는 범위 이상으로 거대하기 때문에 유전자 제일주의만으로는 다 설명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이타성을 발휘하게 된 원동력을 ‘인류가 작고 약하다’는 데서 찾았다. 생존을 위해 다른 동물이 지니지 못한 능력, 바로 보편적 협력과 이타심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남을 위해 자기를 포기할 줄 아는 능력, 생판 모르는 남과 콩 한쪽도 나눠먹고 자신을 희생하는 능력….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말을 자신도 모르게 실천하는 것도 인류의 오랜 삶의 방식인 셈이다. 이 교수는 우리가 180만년 전부터 남을 도와왔다고 전했다.

그런데 요즘 ‘나와 내 가족만 잘 먹고 잘 살겠다’면서 우리의 소중한 공동체를 파괴하려는 인간들이 출몰하고 있다. 만약에 그들이 이랬다면 어땠을까.

잘나가던 검사장 출신 변호사 홍만표는 퇴임하자마자 강원도 삼척으로 갔다. 1년에 100억원씩 벌어들일 수 있는 전관예우 능력을 포기하고 대신 가난한 고향 사람들에게 무료 변론을 해주고 있다. 거대 게임업체 넥슨 창업주 김정주는 비상장주식 수십만주를 말단 직원들과 청소용역업체 아주머니들에게 아낌없이 나눠줬다. 이들은 상장 대박이 난 뒤 김정주와 같이 수익금의 10%씩을 모아 장학재단을 세웠다. 진경준은 비상장주식을 주겠다는 김정주의 제안에 “아무리 친구라 해도 검사가 뇌물은 받을 수 없다”며 단박에 거절했다. 출세가도를 달리던 교육부 정책기획관의 발언도 화제다. 나향욱은 기자들을 만나 “1%의 개·돼지가 군림하는 신분제로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 99%의 깨어 있는 민중이 주도해 대한민국을 바꿔나가야 한다”는 소신을 밝혔다.

하지만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정반대 상황이 벌어졌다. 이들의 이타성은 일말의 거리낌도 없이 내동댕이쳐져 버렸다.

물론 아직은 우리 사회에 ‘공동체 유지자’들이 더 많다. 노점을 하고 김밥 장사를 해 평생 모은 돈을 장학금으로 내놓거나, 수백억원에 달하는 거금을 학생들을 위해 쾌척하는 기업가들도 적지 않다. 누군가 불의하게 세상을 뜨면 함께 슬퍼하고 분노하는 ‘동지적 공동체 유지자’들도 부지기수다.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힘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된 부류의 ‘공동체 파괴자’들이 늘고 있는 것은 분명 위험한 징조다. 한줌도 안 되지만 파괴범의 악질적 행태가 미치는 영향은 엄청나다. 모방 파괴자들을 양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을 뿌리 뽑지 않고 아이들에게 남을 도우며 살라고 가르칠 순 없지 않은가. 더욱이 우리 대(代)에서 인류의 오랜 전통인 이타와 협력의 유전자가 사라지거나 약해지게 해선 안 된다. 소수의 파괴자를 제외한 다수가 공동체를 유지하고 발전시킬 방법을 고민할 때다.

한민수 논설위원 ms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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