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황주리의 나의 기쁜 도시] 미얀마 바간에서 아침을 기사의 사진
황주리 그림
터키의 카파도키아에서 열기구를 처음 타본 이래 두 번째로 미얀마 바간에서 열기구를 탔다. 카파도키아에서 자연이 만들어낸 기암괴석들을 내려다보며 일출을 바라보는 것도 신비롭지만, 바간의 해가 떠오르는 하늘에서 내려다보이는 수많은 사원의 모습도 잊지 못할 풍경이다.

자연과 문명은 그렇게도 반대이지만 동시에 그렇게도 닮아있다. 온 도시 전체가 거대한 사원인 바간은 이방인의 눈에 마치 달나라처럼 낯설고 독특한 풍경을 선물한다. 그리고 며칠 지나면 마치 그곳이 고향인 듯 익숙해진다. 시간을 잊게 하는 신비스러운 사원들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신발을 벗어야 한다. 그 많은 사원을 제대로 구경하려면 하루 종일 신발을 벗었다 신었다 하는 수고로움을 어쩔 수 없다. 신발 벗는 일에 익숙하지 않은 서양인 관광객들과 큰 다툼이 일어날 정도로 미얀마 사람들은 사원에 맨발로 들어가야 하는 신성함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 하루 종일 사원 구경을 하면서 인간의 마음이 깃든 너무도 다양한 불상 조각들의 표정을 바라보며 묘한 감회에 젖었다. 즐겁지만 고된 하루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가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그만 변기가 막히는 소동이 났다. 사정을 이야기하자 한 청년이 환하게 웃으며 화장실로 들어가 문을 잠그더니 잠시 후 콧노래를 부르며 변기를 고치고 나왔다.

하도 고마워 5달러를 주었더니 너무 많다는 듯 환하게 웃으며 정중하게 고맙다 말한다. 문득 그날 본 불상의 얼굴 중 하나랑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얀마 남자들은 일생에 한 번은 출가를 한다. 그 목적이 다를지언정 군대를 가는 일과 출가하는 일의 과정은 절제와 수행이라는 면에서 어쩌면 비슷한 일일지도 모른다. 미얀마식 성인식인 ‘신쀼 의식’은 열 살 전후 소년들이 싯다르타 왕자가 왕위를 버리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출가하는 모습을 재현하는 것이다. 사나흘부터 몇 달 갔다 오는 단기 출가도 있지만, 오십 세가 되어 가족을 둔 남편이 아주 출가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고 한다. 우리네 생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나이 들어 출가한 남자들이 공양을 하러 다니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아내가 공양을 넣어주면 수행에만 몰두할 수 있다고 했다. 모두가 다 같이 나누어 먹기 때문에, 아내가 만든 공양이 누구에게 돌아갈지 아무도 모르지만 그래도 남편을 위해 음식을 만드는 아내의 마음이 바로 붓다의 마음이 아닐까?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미얀마 양곤에서 아웅산 묘역에 들렀다. 입구의 독립된 작은 공간에 북한에 의해 저질러진 아웅산 묘역 폭탄 테러에 희생당한 대한민국 순국사절 추모비가 있었다. 어느새 삼십여년이 지나 오래도록 잊힌 이름들을 적어본다. 이중현 동아일보 사진부장, 한경희 대통령 경호관, 정태진 대통령 경호관, 이재관 대통령 공보비서관, 민병석 대통령 주치의, 하동선 해외협력위원회 기획단장, 김용한 과학기술처 차관, 이계철 주버마 대사, 김재익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 강인희 농수산부 차관, 이기욱 재무부 차관, 심상우 민정당 총재 비서실장, 함병춘 대통령 비서실장, 서상철 동력자원부 장관, 김동휘 상공부 장관, 이범석 외무부 장관, 서석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한글로 적힌 이름을 보니 뭉클했다. 이렇게 긴 명단을 적어보는 건 이 자리에서 그들을 기억하기 위해서다. 아웅산 묘역에서 만난 추모비 속의 그 아까운 이름들은 누군가의 아들이고 남편이며 아버지였던 그리운 이름들이다. 버마로 각인되어 있는 미얀마는 그렇게 우리에게 아픈 기억의 장소이기도 하다. 그때가 바로 엊그제 같은데 거짓말 같은 세월이 그런 사실이 언제 있었냐는 듯 우리를 미얀마의 낯선 풍경 속으로 데려간다. 저렇게 두면 도둑맞지 않을지, 비바람과 뜨거운 햇볕에 소실되지는 않을지 걱정되는 수많은 보물이 보물인지도 잘 모르는 듯 환하게 웃으며 지나가는 미얀마 사람들의 얼굴이 불상들의 얼굴과 겹쳐졌다.

종교의 매력은 우리의 하찮은 삶을 금처럼 값지게 만드는 시간의 연금술이라는 데 있지 않을까? 여행길에 계속 신발을 벗으라고 독촉하며 우리 일행을 가이드해준 미얀마 여성 ‘주주’는 한국에서 남편과 함께 몇 년 동안 공장에서 일하며 지냈다 했다. 서울에서 좋은 한국인도 나쁜 한국인도 만났다고 했다. 세상 어디인들 그렇지 않으랴. 서울로 가는 비행기를 타러 들어가는데 이별 인사를 하러 나온 주주는 섭섭해서 눈가가 빨개졌다. 눈물을 흘리는 가이드 주주가 내게는 문득 어릴 적 영화에서 본 선한 외계인처럼 느껴졌다.

그렇게도 미얀마는 참 낯설지만 다정하고 따뜻한 외계였다. 바간에서 열기구를 타던 새벽이 눈에 밟힌다.

황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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