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봉관 <6> 어머니 도우려 저수지 공사장서 자갈 캐는 일

‘전국 어린이 모범 효행상’ 2등 수상, 도지사 등이 금일봉 … 중학교에 진학

[역경의 열매] 이봉관 <6> 어머니 도우려 저수지 공사장서 자갈 캐는 일 기사의 사진
이봉관 장로 중학교 시절 모습. 서희건설 제공
고집을 피워 초등학교 4학년에 입학하긴 했지만 성경공부로 한글만 뗐던 나는 읽고 쓰는 것 말고는 아는 게 없었다. 특히 수학 시간에는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 마냥 멍하니 칠판을 바라다보고 있었다. 숫자는 알아도 ‘더하기’ ‘빼기’ ‘구구단’이란 단어 자체를 모르던 내게 수학은 철천지원수였다. 선생님이 칠판에 셈을 적고 물어보면 같은 반 친구들이 모두 손을 드는데 나만 조용히 있었다. 결국 생애 첫 학기에 수학 과목 ‘0점’이란 성적표를 받아야 했다. 너무 창피해서 학교를 다니기 싫었다. 그때 문득 성경 한 구절이 떠올랐다. ‘원수를 사랑하라.’(눅 6:27) 그깟 수학도 공부로 치면 한글과 다를 게 없었다.

‘학교도 안 다니고 성경 말씀으로만 한글을 깨우쳤다. 그리고 그토록 소망하던 학교를 다니게 됐는데, 더하기 빼기가 뭐라고 수학이랑 원수를 지나.’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용기가 생겼다. 셈을 하다 틀리면 선생님께 묻고 또 물었다. 조금씩 수의 이치가 머릿속에 들어왔다. 다른 과목들도 점점 재미가 붙었다.

그렇게 한 해를 마무리할 때쯤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꼴찌였던 내가 전체 60명 중 6등으로 우등상을 타게 된 것이다. 당시 학업 발달과정을 중요하게 평가해 1학기를 제외하고 2학기 성적으로 우등생을 선발했다. 불과 6개월 전 더하기 빼기도 못해 나를 바보라고 놀리던 아이들 중 54명을 제친 셈이다. 한 번 자신감이 붙자 학업 성취도는 가파르게 상승했다. 5학년 때부터는 줄곧 1등을 도맡아 했고 6학년 때는 전교 어린이회장이 됐다.

이런 과정을 신기하게 여긴 담임선생님이 나의 일상생활에 대해 조사를 하셨다. 선생님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학교에 입학하면서 낮에 농사일을 할 수 없게 된 나는 돈을 벌기 위해 저수지를 막는 둑 공사장에서 자갈 캐는 일을 했다. 공사장 일은 새벽과 밤에만 할 수 있었다. 새벽에 공사장에서 자갈을 캐다가 어머니가 아침밥을 가져다주시면 그것을 먹고 등교했다. 하교하면 바로 공사장에 가서 어머니와 밤늦게까지 일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공부는 이후 시간에 했다.

선생님은 고단한 생업을 견뎌 가면서 학업에 진력하는 나에 대해 상세히 기록해 ‘전국 어린이 모범 효행상’ 후보로 추천했다. 그리고 어머니를 도와 생활고를 극복해 가는 효자로 인정받아 전국 2등으로 이기붕 국회의장상을 받았다(1등은 이승만 대통령상). 지금의 청와대인 경무대에서 생필품, 학용품 등 많은 상품을 선물로 받았다.

경주의 한 시골마을에서 이룬 쾌거에 도지사, 교육감, 경찰청장, 군수 등이 금일봉을 전달했다. 성적이 오르는 아들의 모습에 기특해하면서도 중학교에 갈 학비가 없어 내심 걱정이던 어머니의 얼굴에서 근심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당시 시골에서 중학교에 진학하는 아이들은 20% 미만이었다.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축복에 가슴이 벅찼다. 내 가슴에 큰 인물이 될 수 있으리라는 꿈이 생겼다. 하나님께서 무엇이든지 해결해 주실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게 원대한 꿈을 가지고 중학교에 입학했다.

정리=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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