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 뉴스] MLB ‘시카고 컵스’ 이름 무슨 뜻이지?  1901년 풋내기들이 뛴다고 ‘Cubs’ 기사의 사진
미국 메이저리그의 LA 다저스, 뉴욕 양키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토트넘 홋스퍼, 셰필드 웬즈데이, 미국 프로농구 NBA의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로고(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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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서 태어나 한 번도 집을 옮긴 적 없는 친구는 프로야구 연고 구단 한화 이글스를 '한화'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한결같이 '이글스'라고 부릅니다. 우리나라에서 프로스포츠 구단을 간략하게 지칭할 때 이름보다 앞에 있는 기업·지역을 선택하는 것이 보편적입니다. 한화 이글스는 보통 줄여서 한화라고 하죠. 이글스를 고집하는 친구가 유별나게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왜 굳이 이글스라고 부르는 걸까요. 친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빙그레든 한화든 이글스는 영원하잖아.” 모기업은 1994년 빙그레에서 한화로 변경됐지만 이글스라는 이름은 1985년 창단하고 31년 동안 바뀌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빙그레는 창단하면서 이름을 왜 이글스로 지었을까요. 골수 한화 팬도 이 부분에선 말문이 막힐 겁니다. 독수리는 대전을 상징하는 동물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보문산에 독수리떼 출현’이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다른 구단도 마찬가지입니다. 애써 의미를 부여하고 기치를 세우지 않고서야 롯데가 자이언츠인 이유, KIA(옛 해태)가 타이거즈인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나라 프로스포츠에서는 구단의 역사, 연고지역의 특색과 같은 정체성보다 적에게 강하게 보일 수 있는 맹수, 새롭게 창조한 캐릭터를 이름으로 사용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일본 중국 대만 등 주변국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세계 최고의 프로스포츠 시장을 가진 미국, 클럽스포츠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유럽의 상황은 조금 다릅니다. 이름으로 정체성을 드러낸 구단들이 많습니다. 이름이 붙은 과정만 알아도 적게는 수십년, 많게는 100년을 넘긴 구단의 역사나 지역의 특색을 꿰뚫어볼 수 있죠. 정말 재미있는 과정을 거쳐 탄생한 이름이 많습니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대표구단 뉴욕 양키스의 원래 이름은 뉴욕 하이랜더스(Highlanders)였습니다. 맨해튼 165번가와 브로드웨이 사이에 있는 홈구장이 고지대여서 이런 이름을 붙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1913년 같은 연고의 다른 구단인 뉴욕 자이언츠(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홈구장을 함께 사용하기 위해 저지대로 내려오면서 구단은 어울리는 이름을 다시 모색해야 했습니다.

구단은 지역 일간지 뉴욕프레스의 국장 짐 프라이스가 ‘하이랜더스의 철자가 길다’는 이유로 1904년부터 이 구단의 기사를 실을 때 지면에 사용했던 애칭 양키스(Yankees)를 진짜 이름으로 채택했습니다. 그렇게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야구단 브랜드 뉴욕 양키스가 탄생했습니다.

미국 동부에 뉴욕 양키스가 있으면 서부 태평양 연안에는 LA 다저스가 있습니다. 다저스의 과거 연고지는 뉴욕 브루클린이었습니다. 구단은 1884년 창단한 뒤 이름을 여러 차례 바꿨습니다. 1932년에야 확정한 이름이 브루클린 다저스(Dodgers)였습니다.

그 시절 뉴욕시민들은 복잡하고 분주한 브루클린의 아침에 전차를 이리저리 피하며 출근하는 노동자들을 트롤리 다저스라고 불렀습니다.

영어 ‘Dodge’는 우리말로 ‘빠르게 움직이다’ 또는 ‘피하다’라는 뜻입니다. 이 노동자들은 밤에 야구장의 관중석을 채우는 팬들이었습니다. 팬들의 별명을 구단 이름으로 사용한 셈이죠. 구단은 1958년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로 옮기면서 지금의 LA 다저스가 됐습니다.

1908년을 마지막으로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지 못해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긴 불운에 시달리고 있는 시카고 컵스는 우리나라 야구팬들의 말장난처럼 컵(Cup)이나 커브(Curve)가 아닙니다. 구단의 이름인 컵스(Cubs)는 아기곰들, 보이·걸스카우트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뜻이 더 있습니다. 바로 풋내기들이죠.

구단은 1876년 시카고 화이트 스타킹스(White Stocking)라는 이름으로 창단했습니다. 하지만 1901년 선수단을 거의 신인으로만 구성하면서 풋내기들, 즉 컵스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이 별명이 공식 명칭으로 굳어졌습니다. 미시간호를 낀 일리노이주 최대 도시 시카고는 과거 곰과 코요테가 자주 출몰한 곳이기도 합니다. 컵스는 그 시절 구단에 가장 어울리는 이름이었을 겁니다.

프로풋볼(NFL) 프로농구(NBA) 등 미국의 다른 프로스포츠에서도 구단의 정체성을 나타낸 이름들이 있습니다. NFL 피츠버그 스틸러스(Steelers)는 미국 동부 최대 철강도시인 연고지의 특색을 살렸습니다. NBA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76ers)는 미국이 독립을 선언한 1776년을 기리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필라델피아는 식민지 대표들이 독립선언문을 채택한 미국의 수도였습니다.

유럽 프로축구 구단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잉글랜드 리버풀, 스페인 바르셀로나처럼 도시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고 FC(Football Club)만 붙인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조금 더 독특한 이름으로 정체성을 드러낸 구단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손흥민(24)의 소속팀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 홋스퍼가 그렇습니다.

토트넘은 영국 런던시내의 한 지명입니다. 홋스퍼(Hotspur)는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등장한 기사 헨리 퍼시의 별명 해리 홋스퍼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죠. 홋스퍼는 원래 같은 지역 크리켓클럽의 이름이었습니다. 클럽 회원들은 1882년 런던 중학생들과 함께 축구단을 창단했습니다. 그게 바로 토트넘 홋스퍼입니다.

잉글랜드 프로축구 2부 리그 셰필드 웬즈데이(Wednesday·수요일)는 요일을 활용했습니다. 셰필드의 모태는 토트넘과 마찬가지로 크리켓클럽입니다. 이 클럽은 매주 수요일 경기 일정을 잡으면서 웬즈데이 크리켓클럽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습니다. 이 클럽에서 1867년 창단한 축구단이 웬즈데이 풋볼클럽, 1929년 개명한 이름이 셰필드 웬즈데이입니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습니다. 프로축구 K리그 챌린지 부천FC 1995가 그렇습니다. 1995는 서울 연고의 유공 코끼리를 응원한 PC통신 동호회의 설립연도입니다. 이 동호회는 유공 코끼리가 부천 SK로 변경한 뒤에도 서포터스로 활동했습니다. 하지만 2006년 제주 유나이티드로 연고지를 완전히 옮기면서 신생 구단을 창단했습니다. 그게 부천 FC 1995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팬에 의한, 팬을 위한 구단의 설립 목적을 이름에 담은 대표적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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