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염성덕] 현대상선이 사는 길 기사의 사진
표류하던 현대상선이 기사회생을 위한 항로로 접어들었다. 5일 신주를 상장하고 산업은행의 자회사로 편입하게 된 것이다. 창립 50년 만에 현대그룹을 벗어나 채권단 공동관리 아래 경영 정상화를 위한 닻을 올리는 셈이다.

현대상선의 부침은 국제경제 무대의 냉혹함을 여실히 보여줬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맨땅에서 기업을 일궜다. 정 명예회장은 1976년 낡은 유조선들로 국적선사인 아세아상선을 설립했다. 현대상선으로 개명한 뒤 신한해운과 합병했고, 운항노선을 확장했다. 현대상선은 시나브로 세계 8위 해운사로 급성장했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파고는 너무 높았다.

현대상선은 망망대해의 일엽편주로 전락했다. 구조조정 과정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강풍을 뚫고 가는 조각배처럼 위태위태했다. 정부와 채권단, 현대상선이 제 위치에서 조타수 역할을 하며 힘을 모았다. 먼저 현대상선이 허리띠를 졸라맸다. 2013년 말부터 올 4월까지 현대증권을 포함한 보유 자산을 매각해 5조원 이상을 조달했다. 오너 일가의 사재 출연과 대주주 감자를 단행했다. 사채권자들의 채무 조정도 이뤄졌다.

외국 선주들과 용선료(배를 빌리는 비용)를 낮추려는 협상이 문제였다. 현대상선이 재기하려면 반드시 통과해야 할 관문이었다. 정부와 채권단은 배수진을 쳤다. “현대상선이 용선료 협상에 실패하면 법정관리를 강행하겠다.” 유일호 경제부총리와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콧대 높은 선주들을 압박했다. 결국 용선료를 21%가량 깎는 데 성공했다. 이해 관계자들의 고통 분담이 빛을 발했다. 현대상선은 해운동맹 2M에 가입했다. 부채비율도 3309%에서 400% 이하로 낮췄다. 이 정도 부채비율이면 정부가 운영하는 12억 달러의 선박펀드를 이용하는 길도 열릴 전망이다.

현대상선 구조조정에는 국책은행의 추가 자금이 투입되지 않았다. 혈세 먹는 애물단지인 대우조선해양이나 수조원을 지원받고도 법정관리에 들어간 STX조선해양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동걸 산은 회장은 “자금 지원을 추가로 받지 않고 회생의 길을 걷고 있는 현대상선의 구조조정 모델을 대우조선해양과 한진해운 등에도 적용하겠다”고 말했다. 바람직한 방향이다. 구조조정 중인 기업들이 벤치마킹해야 할 모델이다.

그렇지만 현대상선은 회생을 위해 최소한의 기반만 다졌을 뿐이다. 어려운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영업력 회복, 선박 대형화, 항로 재편, 서비스 경쟁력 확보, 중·장기 사업 모델 개발 등을 통한 수익성 향상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난제를 해결하려면 최고경영자(CEO)를 제대로 뽑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지금까지 드러난 정부와 산은의 인사 난맥상을 보면 걱정이 앞선다. 산은은 자회사들에 낙하산 인사를 줄줄이 내려보냈지만 부실을 키웠다. 특히 산은 출신의 대우조선해양 최고재무책임자들의 도덕적 해이는 국민의 질타를 받고 있다.

올 들어 산은의 대우건설 사장 공모를 둘러싼 불협화음은 점입가경이다. 사장 공모, 후보자들 압축, 재공모를 거치면서 외압 의혹과 낙하산 논란이 불거졌다. 산은 측 사장추천위 위원들이 다른 위원들을 만나 특정 인사를 사장 후보로 결정하자고 권유한 사실도 밝혀졌다. 정부와 정치권, 산은이 구태를 답습하고 있다.

산은은 최대한 이른 시일 안에 현대상선을 정상화시키고, 현대상선 보유 지분을 매각하겠다는 자세로 일해야 한다. 더 이상 부실기업의 종합전시장이란 소리를 들으면 곤란하다. 정부와 산은은 투명하고 합리적 절차를 통해 현대상선을 위기에서 구할 수 있는 전문가를 CEO로 선임해야 한다.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