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전정희] 새문안교회, 재건축 멈춰라 기사의 사진
서울 광화문 새문안교회가 과연 교인들만의 것일까. 수수했던 그 새문안교회는 흔적조차 없다. 그 자리는 높은 가림막에 가려진 채 재건축 공사가 한창이다. 5일 아침 옛 예배당 터 뒤쪽을 통해 들여다본 한국 최초의 장로교회 새문안교회는 지하주차장 건설을 위한 H빔 구조물과 기계 굉음 등으로 여느 공사장과 다를 바 없었다.

가림막 벽면엔 ‘새문안교회 새 성전 건축에 따른 예배장소 이전 안내’ 현수막이 교회 터임을 알렸다. 인근 교회 부속건물 ‘언더우드교육관’과 ‘광화문빌딩’이 임시 예배처라고 안내하고 있다. 가림막엔 1887년 봉헌한 일자 기와 예배당(현 경희궁 건너편 피어선빌딩 자리) 그림이 정겹다. 그 옆으로 1910년 봉헌한 현재 위치의 두 번째 성전 벽돌예배당, 해방된 조국이 너무나 기뻐 49년 봉헌한 증축 예배당, 그리고 72년 대한제국 황태손이자 건축설계사였던 이구가 ‘한국적 전아(典雅)의 풍취’를 남겼던 예배당이 이어진다. 모두 사진 자료로도 남아 새문안교회가 갖는 역사성을 전하고 있다.

새문안교회는 1885년 입국한 언더우드 선교사가 새문안교회 기와 예배당을 짓고 당회를 구성해 우리나라 최초의 조직교회가 됐다. ‘한국 교회의 어머니’라고 부르게 된 이유다. 그날의 한옥 교회 설립 저녁예배를 존 로스 선교사가 이렇게 표현했다. “나를 안내한 언더우드씨는 그날 저녁에 작은 무리로 장로교회를 조직하기 위해 자신의 작은 예배당에 가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조그만 등을 든 한국인의 안내를 받아 좁은 골목길을 따라가다가 마침내 작고 빈 안뜰로 들어섰다…. 그 안에 들어가 보니…학식 있어 보이는 남자 14명이 거기에 있었다. 이들 중 한 사람이 그날 밤에 세례를 받았는데 그날의 제일 중요한 일은 두 사람을 장로로 선출하는 일이었다.”

조선말 ‘조그만 등’을 든 이들이 서울 한복판에 새문안교회를 설립, 이 땅에 복음의 씨앗을 심은 것이다. 이문세 노래 ‘광화문 연가’ 가사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이제 모두 세월 따라 흔적도 없이 변하였지만…언덕 밑 정동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눈 덮인 조그만 교회당 향긋한 오월의 꽃향기가 가슴깊이 그리워지면 눈 내린 광화문네거리 이곳에 이렇게 다시 찾아와요.’

정동에서 시작된 새문안교회는 새문(新門路)의 ‘작은 예배당’으로 2014년까지 우리 마음의 낭만과 영성 공간이었다. 무겁게는 한국교회 역사였다. 조그만 등으로 불 밝힌 이들이 조그만 교회로 남아 작은 자 이웃을 위로했다. 그러면서도 대한민국 중심에서 고난 받는 이웃을 눈동자같이 지켜주던 온화한 교회였고 공의를 위한 시국기도회에 문을 열어준 강한 어머니교회였다.

그런데 2017년 12월 완공되는 13층 유리건물 새 성전은 광화문 오피스빌딩들과 스카이라인을 같이하며 세련된 자태를 자랑한다. 프랑스 현대적 상업지구 라 데팡스 외관 같다. 직전 예배당의 전아함, 즉 아담한데도 고고한 빛은 볼 수 없다. 다만 효용성이 강남 ‘사랑의교회’와 흡사한 ‘멋진 건축물’임에 틀림없다.

한데 생각해보자. 전근대, 근대, 현대사를 관통하며 하나님의 가치로 역사를 움직여온 그 유서 깊은 교회가 예배당 건립을 단지 효용성의 가치만 최우선으로 삼아야 하는가. 새문안교회 인근을 보라. 구세군교회 종교교회 정동교회 성공회대성당 남대문교회 등 영성 깊은 근대 건축이 즐비하다. 기도가 절로 나오게 하는 성공회 성당은 최근 지자체가 나서서 세무서 건물을 없애고 뷰(view)를 열어줬다. 보존하라는 게 아니다. 교인이 좀 불편하더라도 한국 기독교의 상징인 만큼 교회건축의 영성을 세우라는 거다.

늦지 않았다. 새문안교회는 건축 기준을 달리해야 한다. 하나님의 시간은 세상과 다르다. 건축을 멈추고 회중의 지혜를 모으자. 몇 년 공터로 두면 어떤가. 작고 불편하더라도 영성 깊은 천년 건축이 필요하다.

전정희 종교국 부국장 jhj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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