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원준 칼럼] 관광객의 공습 기사의 사진
어쩌다 농사 기술을 익혀 정착생활을 하기 전 인류는 수렵채집인이었다. 어느 순간 일제히 농사를 시작하진 않았을 테니 수렵채집인과 정착농경인이 공존하던 시기가 있었을 것이다. 먹을 것을 찾아 떠도는 이들이 어딘들 못 갔을까. 농경인의 정착지에 수렵채집인이 들이닥친 경우도 흔치 않았을 테다. 먹거리를 곁에 두고 길러 먹는 집단과 눈에 띄면 잡아먹는 집단의 평화적 공생? 불가능하다. 전쟁이 벌어졌을 것이다.

네덜란드 잡지 ‘암스테르담: 미래를 예측하다’는 현대의 관광객이 수렵채집인과 비슷한 습성을 가졌다며 공통점을 꼽았다. “그들은 목표물(사냥감·관광명소)을 찾아 늘 신경을 곤두세우고 두리번거린다. 주로 무리지어 다니는데 동선을 정하느라 끊임없이 떠든다….” 인구 80만 암스테르담에는 연간 1000만명 넘는 관광객이 몰려온다. 이 잡지는 오로지 관광객이 유발하는 도시 문제, 그들이 휘젓는 통에 망가지는 시민의 삶을 다루려고 지난해 창간됐다. 수렵채집인의 대규모 공습에 맞서 정착민이 마침내 무기를 들었다고 할까.

이런 논리를 편다. “오늘날 사냥이 레저로 유지되는 건 씨가 마르지 않게 사냥감을 보호하는 규제 덕이다. 대표적 예로 수렵금지기간이 있다. 그 기간에 동물은 쫓기던 몸을 추스르고 번식을 한다. 암스테르담 시민에게도 그렇게 숨 쉴 구멍이 필요하다.” “관광객에게는 주민의 일상도 좋은 사냥감이 된다. 다른 삶을 보러 떠나는 게 여행 아닌가. 우리 일상이 가능해야 관광지로서 매력도 지속될 수 있다.”

암스테르담의 자전거도로에서 30초만 어물쩍거려 보라. 신경질이 듬뿍 담긴 현지인 자전거의 경적 을 듣게 될 것이다. 경제적 이득을 가져오기에 이런 관광객을 이해하던 이들이 짜증을 내는 건 너무 많아진 탓이다. 관광 인파는 1990년대의 2배가 돼 있다. 에어비앤비를 통해 도심 주택이 속속 관광숙소로 변해간다는 뜻에서 ‘암스테르담의 호텔화’란 신조어가 등장했다. 도시 전체가 거대한 젠트리피케이션을 겪고 있다. 시장(市長)의 최우선 업무는 주변 도시와 관광객 분산책을 협의하는 일이 됐다.

“안네의 집에 들어가려 몇 시간씩 기다리는 건 관광이 아니라 노동이다. 관광객이 너무 많으면 관광객도 괴롭다.” 잡지는 이런 논리로 암스테르담에 ‘요금장벽’을 쌓자고 제안했다. 각종 비용을 대폭 인상해 관광객 유입을 통제하자는 얘기다. 이탈리아 베네치아는 실제 ‘도시 입장료’를 검토하고 있다. 홍콩 주민은 “유커(중국인 관광객) 물러가라”고 시위를 벌였다. 상품을 싹쓸이하는 통에 물가가 폭등하고 생활이 불편해져서다. 그들은 유커를 ‘메뚜기떼’라고 부른다.

지난해 세계에서 약 12억명이 해외관광을 했다. 해마다 4∼5%씩 늘어날 전망이고 정착민과의 ‘분쟁’ 역시 증가할 것이다. 서울은 아직 관광객이 충분히 많지 않은 건지, 그들이 온다 해서 망가질 삶의 여유가 없는 건지 큰 갈등은 없어 보인다. 조짐은 제주도에서 나타나고 있다. 몇 년 새 관광객이 급증하며 제주시 교통체증은 한계치에 이르렀다. 우도는 출입차량 수를 제한하는 지경이 됐다. 관광객에게 환경부담금을 부과하는 논의도 시작됐다. 그럼에도 관광개발의 삽질은 갈수록 분주하다. 서쪽에 비해 동쪽은 개발이 덜 돼 호젓함이 있었다. 이제 그곳에 신공항이 들어서면 관광객의 공습은 더욱 거세질 테다.

관광과 삶의 균형을 찾아 나선암스테르담은 실패할 것이다. 전문가들은 베네치아의 전철을 밟을 거라 예상한다. 그들은 이 고민을 너무 늦게 시작했다. 뭍에 비하면 한없이 느린 삶의 풍경이 매력적인 섬. 제주다움을 잃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신공항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

태원준 논설위원 wjt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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