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0일 제2차 과학기술전략회의를 열고 신성장동력 확보와 삶의 질 제고를 위한 9대 국가전략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성장동력 분야에는 인공지능(AI) 가상·증강현실(VR·AR) 자율주행차 경량소재 스마트시티 등 5가지를 선정했고, 삶의 질 분야는 정밀의료 탄소자원화 초미세먼지 바이오신약 등 4가지를 꼽았다. 1조6000억원을 투자해 이 9개 분야를 집중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AI 전문인력 3600명과 전문기업 1000개 육성, 2020년까지 VR·AR 원천기술 확보, 2024년까지 레벨4 수준의 완전 자율주행차 개발 등 화려한 청사진을 제시했다. 과학기술전략회의는 우리나라 연구·개발(R&D)을 총괄하는 최상위 컨트롤타워다.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주재한다. 이 기구는 지난 5월 구성돼 첫 회의를 가졌다. 불과 석 달 만에 한국의 미래 먹거리 5가지를 찾아내고 구체적인 청사진까지 내놨다. 도저히 가능할 것 같지 않은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 우리의 미래가 걸린 국가전략을, 엄청난 자원이 투입될 성장동력을 이렇게 석 달 만에 결정할 수 있는 건지, 그래도 되는 건지 의심스럽다.

성장동력 프로젝트 5가지를 보면 트렌드 보고서를 읽는 듯하다. 이런 게 떴다고 그동안 언론에 보도된 것들로 대부분 채워졌다. 알파고는 이미 이세돌 9단과 바둑을 둬서 이겼고, AR 게임 포켓몬고는 세계적 선풍을 일으켰다. 미국에선 자율주행차 개발이 아니라 사고가 뉴스인 상황이다. 구글과 닌텐도와 테슬라가 없었으면 우리나라 성장동력을 어떻게 찾아냈을까 싶다. 남들이 저만치 앞서 간 분야에 이제라도 뛰어들어 따라가자는 산업화시대의 패스트 팔로어 전략에서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그런 전략이 통하지 않으니 국가 R&D를 혁신하자고 만든 게 과학기술전략회의 아닌가. 그 기구에서 내놓은 국가전략이 선진기업 따라 하자는 것이다. 정말 치열하게 검증하며 살펴봤는데 우리 강점을 살려 육성할 분야가 없었던 거라면 이 프로젝트는 암울한 미래를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정부가 그동안 발표해온 걸 되짚어보면 한국은 이미 성장동력이 차고 넘쳐야 한다. 미래창조과학부는 2014년 ‘13대 미래 성장동력’을 선정했다. 스마트자동차, 5G 이동통신, 심해저 해양플랜트, 맞춤형 건강관리, 웨어러블 기기, 지능형 로봇 등이다. 2015년에는 이를 산업통상자원부의 13대 산업엔진과 합쳐 ‘19대 미래 성장동력’을 채택했다. 이보다 앞서 이명박정부는 ‘17대 신성장동력 산업’, 노무현정부는 ‘차세대 성장동력 10대 산업’을 선정했다. 그 성장동력들은 지금 다 어떻게 돼 있나. 정책 연속성의 부재 탓에 우리나라 성장동력은 찾았다 싶으면 소멸하는 운명을 갖고 있다. 정부는 “이럴 거면 차라리 민간에 맡기라”는 학계와 업계의 목소리부터 찾아가 다시 들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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