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으로 남긴 ‘평생의 모델’ 아내… 한국 추상조각의 선구자 고 김종영 ‘조각가의 아내’ 展 기사의 사진
조각가 김종영이 1949년 아내를 그린 ‘부인’(왼쪽)과 1955년 아내와 아이를 소재로 한 드로잉 작품. 김종영미술관 제공
인물화를 그리는 화가나 인체상을 작업하는 조각가는 제자 또는 전문모델을 작품 소재로 삼는 게 보통이다. 부인을 모델로 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한국 추상조각의 선구자 우성(又誠) 김종영(1915∼1982)이 부인을 모델로 삼아 다수의 드로잉과 조각 작품을 남겼다는 사실은 뜻밖이다. 서울대 교수로 평생 동안 점잖은 양반처럼 살아온 그였기 때문이다.

김종영이 1940년대 말부터 30여 년간 아내를 모델로 작업한 회화와 조각 작품이 공개됐다. 서울 종로구 평창길 김종영미술관은 ‘조각가의 아내’라는 타이틀로 드로잉 30점, 조각 7점 등 37점을 선보인다. 미술관 측은 “근·현대 조각가 가운데 김종영 만큼 아내를 많이 그리고 조각한 작가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많은 드로잉과 부인상을 남겼다”고 한다.

경남 창원의 부잣집 아들로 태어난 김종영은 예술을 향한 열정으로 집안의 도움을 받지 않고 힘겨운 길을 택했다. 결혼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고난을 묵묵히 참아내는 아내의 내조가 없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과묵한 성격의 남편은 아내에 대한 사랑의 표시를 작품으로 남겼다. 돈이 없을 땐 편지봉투나 서류봉투, 스케치북 표지에도 아내를 그렸다.

작품에서 느껴지는 아내에 대한 감정은 은근하고 애틋하다. 1940년대 초반에 그린 아내는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다. 동그랗고 또렷하게 표현된 눈동자는 아내이기 이전에 청년 여성의 모습을 드러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내는 점점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는다. 구상에서 추상으로 변화하는 작가의 작품세계를 반영한 것이다. 구상이든 추상이든 아내에 대한 시선만큼은 따뜻하다.

친필 편지를 보면 아내와 가족 사랑이 얼마나 극진했는지 알 수 있다. “오늘 낮에 중앙극장에서 ‘사랑의 종결’이라는 남녀 간의 애정영화를 보았는데 이 영화를 보는 동안에 병태 엄마하고 같이 보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소. 영화 얘기를 뒷날 해주리다.” “임자의 고생이나 아이들의 불편, 노모의 고생. 이 모든 것이 내게는 견딜 수 없는 마음의 고통이오. 그러나 나는 결코 실망하지는 않소. 우리의 사랑과 건강이 있는 한 이러한 괴로움은 얼마든지 해결해 나갈 자신이 있소이다.”

김종영 창작활동의 내적 뮤즈였던 이효영 여사는 현재 95세로 생존해있다. 그는 “7남매 중 넷째를 임신하고 있었을 때 자꾸 몸을 뒤틀자 남편이 ‘예쁘게 그릴게. 조금만, 옳지’라며 웃던 기억이 난다. ‘정년퇴직하고 늙어서도 모델 해줄래?’해서 한다고 했는데 정년퇴직하고 획 떠나셨다”고 감회를 전했다. 11월 6일까지 전시(02-3217-6484).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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