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지방] 에어컨 기사의 사진
에어컨은 사고 싶지 않았다. 혼수로 장만하긴 했지만 몇 해 뒤 첫아이를 낳고서야 처음 틀었다. 에어컨은 사실 병원이나 공장에서 쓰려고 만든 기계였다. 19세기 초 미국의 내과의사 존 고리가 플로리다의 말라리아 환자들을 위해 병실의 온도를 낮추는 기계 장치를 고안한 것이 초기 형태였다. 근대적인 형태의 에어컨은 20세기 초 뉴욕의 인쇄공장에 처음 등장했다. 뉴욕도 플로리다처럼 대서양 연안이어서 습도가 높다. 종이와 잉크는 습도와 온도에 민감하다. 여름철이면 인쇄공들도 땀에 젖지만 인쇄기에선 잉크가 번지고 종이가 엉키기 일쑤였다. 인쇄공장 사장의 고민을 듣고 윌리스 하빌랜드 캐리어라는 기계공장 사장이 습도와 온도를 조절하는 장치를 만들었다. 공중전화 박스처럼 긴 초록색 상자 모양의 기계였다.

이 기계는 백화점과 백악관에 설치되더니 곧 집집마다 들어섰다. 요즘엔 흔한 미국 이층집에 중앙냉방식 예어컨은 기본이다. 한국에서도 가정 보급률이 80%를 넘었다는데, 나머지 20%는 이 여름을 어떻게 지내는지 모르겠다. 에어컨의 원리는 간단하지만 끔찍하다. 냉매로 실내 열기를 모아 바깥으로 빼낸다. 냉매를 계속 순환시키며 기계가 내뿜는 열도 상당하다. 나는 시원할 테니 너희가 열 받으라는 기계다. “에어컨을 4시간만 틀면 전기요금이 10만원을 넘지 않는다”는 산업통상자원부 채희봉 에너지자원실장의 설명에 기자실 기온이 더 올라가긴 했지만 방귀 뀌려다 소리 낸 사람처럼 뜨끔했던 건 에어컨의 이런 이기적인 속성 때문이다.

에어컨을 돌리면 돌릴수록 지구 전체의 온도는 더 올라간다. 지구온난화의 주범이라는 소들의 방귀보다는 못 할지 몰라도 ‘에어컨디셔너(air conditioner)’를 자칭하는 이 기계는 지구의 에어 컨디션을 망치고 있다. 리모컨을 들어도 에어컨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든 아이 얼굴을 보면 전원 버튼을 누를 수 없다. 에어컨 앞에 아비는 대략 난감, 진퇴양난이다.

글=김지방 차장, 삽화=이영은 기자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