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상직 <8> 펀드매니저 접고 중소기업 경영자의 길로

투자하고 싶은 회사 만들겠다는 꿈 생겨… 막막했지만 긴 기도 끝에 새 출발 결심

[역경의 열매] 이상직 <8> 펀드매니저 접고 중소기업 경영자의 길로 기사의 사진
현대증권 재직 당시 미국 뉴욕을 방문한 이상직 전 의원.
펀드매니저로 성공적인 삶을 살았던 30대 시절 많은 사람들과 좋은 인연을 맺을 수 있었다. 하지만 시련도 있었다. 코스닥에 상장되기 직전의 기업 열 곳에 투자를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달랑 두 곳을 제외한 나머지 회사들이 문을 닫아버렸다. 투자검토 자료를 몇 번이나 다시 들춰보고 분석해본 결과 미래 투자가치가 충분한 회사들이었다. 증권맨 10년 만에 엄청난 회의감과 실패를 맛봤다.

자료에 나타난 기업분석은 틀리지 않았다. 그런데 중요한 한 가지를 놓쳤다는 걸 깨달았다. 바로 경영진의 무능과 도덕적 해이였다. 투자를 받거나 회사가 영업이익을 남기면 그 돈은 설비투자나 R&D, 인재양성 등 회사의 미래를 위해 써야 한다. 그러나 CEO가 흥청망청 써버리면 회사는 문을 닫게 되는 것이다. 이후로는 투자에 앞서서 회사의 재무재표보다 경영진을 살펴보는 습관이 생겼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나는 무엇 때문에 이일을 하는가.’ ‘도덕적 해이에 빠진 경영주에게 이토록 고생해서 투자금을 몰아준 들 무슨 이득이 있겠는가.’

막막한 막다른 길에 다다른 것 같았다.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한참을 기도한 끝에 마음속에 결심이 섰다. 새로운 꿈을 꾸기로 했다. 투자할 회사를 찾아다닐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투자하고 싶은 좋은 회사를 만들고 싶었다. 그렇게 39세에 펀드매니저 생활을 접었다.

펀드매니저를 하면서 경영에 직·간접적인 관여를 하고 조언을 했던 회사가 여럿 있었다. 그 가운데 K라는 회사의 창업주로부터 근 40년 된 회사의 간판을 내리지 말고 경영을 직접 맡아 달라는 인수 제안이 들어왔다. 받아들였다. 이후 중소기업 경영자의 길로 들어섰다.

처음 시작할 때 연매출 300억원 정도의 회사는 몇 년 사이 연결 매출 3000억원 규모에 계열사 10개를 거느린 중견기업으로 10배 이상 성장했다. 그 과정에서 아픔도 많았다.

계열사 가운데 자동차 고무부품을 생산하는 제조회사가 있었다. 국내 완성차 업체에 납품하는 업력이 30년 넘은 곳이었다. 열심히 품질을 향상시키려 했지만 매년 회사의 영업이익은 마이너스이거나 아주 저조한 실적만 되돌아왔다. 이유는 간단했다. 대기업들이 납품협력업체들에게 부당하게 납품단가를 책정하거나 경기불황이나 노사문제로 생산이 줄면 납품을 거절했기 때문이다. 또 원재료비 상승 원가를 다음해에 인상시켜 주는 등 악순환이 이어졌다. 중소기업 경영자가 아무리 죽기 살기로 노력해도 겨우 부도를 모면하고, 직원들의 월급도 올려줄 수 없는 현실이었다.

이런 경험은 훗날 정치를 꿈꾸게 되는 직접적인 이유가 됐다. 실제로 19대 국회에 들어와서 정부의 업무보고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수백군데 협력업체의 매년 평균 영업이익률을 파악해 보니 대부분 물가 상승률을 밑돌고 있었다. 하도급 공정화에 관한 법률을 국회에서 대표 발의해 통과시키게 된 배경이었다.

펀드매니저와 중소기업 경영자로서의 경험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고 새로운 꿈을 꾸게 했다. 이 무렵 전주 바울교회에 등록했다. 새로운 도전은 늘 가슴 떨리지만 하나님께 기도를 하면서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정리=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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