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순만 칼럼] 우리가 대통령을 인식하는 방식 기사의 사진
우리나라 대통령의 힘은 막강하다. 세계적으로도 놀라운 수준이다. 안 되는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무슨 일이든 대통령이 나서야 해결할 수 있다는 논리가 세상을 지배한다. 대통령 중심제에 대한 문제를 얘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대통령을 인식하는 사고방식에 대한 얘기다.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 문제가 발생한다. 논자들이 여러 진단을 한다. 그런 끝에 결론을 말한다. 세법 개정안 처리문제가 대두한다. 여러 진단이 나온다. 해법을 제시한다. 미세먼지 대책 문제가 나온다. 해법을 내놓는다. 해운·조선 산업의 구조조정 문제, 청년고용과 수당 논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문제, 개헌문제 등등 우리나라에서 생겨나는 거의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은 한 가지로 수렴된다. ‘대통령이 나서라’라는 것이다.

모두들 대통령에게 매달린다. 대통령이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언론의, 모든 오피니언 리더의, 여야를 불문한 정치권의 한결같은 주문이다. 평소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듯 비판 일색으로 물고 늘어지는 사람들도 문제가 생기면 예외가 없다. 대통령이 나서야 풀린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우리나라 대통령은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문제 해결능력을 가진 사람, 그런데도 어떤 경우에도 나서지 않는 은자로 비쳐질지 모르겠다.

그러나 어디 그런가. 박근혜 대통령은 만기친람(萬機親覽)의 지도자, 우리 헌정사에 가장 깨알 같은 지시를 하는 대통령으로 호가 나 있다. 나서서 해결할 수 있는 일도 제한적이고, 개입해 오히려 문제를 키우는 경우도 적지 않다.

모든 문제를 놓고 대통령에게 매달리는 형편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는 있다. 대부분 공직자들은 어떻게 해야 문제가 풀리는지를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윗사람이 다그칠 때까지는 움직이지 않는다. 특히 고위공직자들은 대통령이 한마디 해야 그제야 땅에서 얼굴을 떼고 움직인다. 언론에 보도되는 세종시 공무원들의 신풍속도를 보면 교육수준이 높아진다고 세상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렇더라도 모든 문제를 놓고 권력자에게 매달리는 천편일률적인 해법이 야기하는 문제는 심각하다. 요금 인하는 불가능하다고 못 박고 나서 대통령이 한마디 하면 6시간 만에 대책을 내놓는다. 그래서 대통령을 절대적인 권력자로 만들어간다. 권력이 모든 일을 해결하는 사회에서 건전한 시민사회의 싹은 자라기 어렵다.

권력자에게 필요 이상의 주문을 하는 것, 어떤 사안이 됐든 권력자에게 부나방처럼 몰려드는 것, 그것도 오피니언 리더의 직무유기이며 일종의 아부다. 그런 비논리적인 행태는 권력자를 말 한마디로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권력을 향한 이런 신민(臣民)의식이야말로 사회를 구태에 빠지게 만든다. 장관은 대통령에게 등을 보이면 안 된다며 청와대에서 뒷걸음치며 물러나오다 넘어지는 황당한 일이 생겨난다. 정당의 민주화는 요원해진다. 여당의 신임 대표는 “나를 대통령의 내시라고 불러도 부인하지 않겠다”고 발언하는 세상이 된다. 대통령은 그렇게 노골적인 아부를 좋아하는가.

권력이면 다 된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선거에서는 이기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집권 후에는 탕평의 가치에 인색하게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모두가 자신의 위치에서 자기의 일을 정확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갈등으로 들끓는 우리 사회가 논란을 줄이고 성과를 높여가는 방식이 아니겠는가. 정확하게 시시비비가 가려지고, 시민들은 자기의 일에 자긍심을 갖는 사회. 그런 사회에서는 누구든 꽤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임순만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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