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남도영] 외부에 떠넘기는 결정들 기사의 사진
장 마리 슈발리에 프랑스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 수석엔지니어의 지난 6월 21일 발표는 기이한 광경이었다. 동남권 신공항을 둘러싼 10년 논쟁이 외국인 엔니지어 입에서 결정됐다. 슈발리에는 “김해공항 확장이 최적 대안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고, “법적·정치적 후폭풍도 감안했다”고 말했다. 프랑스 엔지니어가 한국의 법적·정치적 후폭풍까지 고려했던 진풍경이 벌어진 지 두 달이 흘렀다. 처절했던 삭발과 분노의 목소리는 이제 들리지 않는다. 슈발리에의 설득이 효과가 있었는지, 밀양도 아니었고 가덕도도 아니었던 게 차라리 다행이었는지 알 수 없다. 이제 우리 국민이 슈발리에의 얼굴을 다시 보는 일은 없을 것이다.

김해공항 확장이라는 슈발리에의 결론은 새롭지 않았다. 10년 동안 많은 국내 전문가들이 지적했던 얘기였다. 슈발리에가 특별했다면, 그가 한국인이 아니라 프랑스인이었다는 점이다. 외국인 전문가라는 단어는 뭔가 객관적이고, 공정하고, 정치적이지 않다는 인상을 풍겼다. 객관성 전문성 공정성 같은 단어들은 우리 정부와 지도층이 가지고 있지 못한 것들이다.

두 달 전 ‘슈발리에 풍경’은 우리의 손과 머리로는 난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우리는 우리 내부가 아닌 다른 곳에서 해법을 구하는 일에 너무 익숙하다. 복지 문제를 논하려면 스웨덴과 노르웨이 정도는 가봐야 하고, 가습기 살균제와 같은 살생물제 문제가 불거지면 미국과 유럽연합(EU) 법규를 들춰봐야 한다. 법원이 박태환의 국가대표 자격을 인정했지만, 박태환의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출전은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의 결정이 있은 다음에야 가능했다.

경북 성주 주민 수백명이 삭발까지 한 것은 ‘중국인가 미국인가’라는 복잡한 외교적 문제나 북핵 해법을 둘러싼 이견 때문이 아니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전자파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다. 휴대전화 기지국도 아파트 주민들 반대로 설치하지 못하는 경우가 잦은데, 사드 전자파가 불안한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주민들은 “사드 전자파는 정말 괜찮나요”라고 묻는데, 정부는 주로 미국 전문가들을 등장시켰다. 미 국방부 미사일방어청(MDA) 제임스 시링 청장이 “(사드 기지는) 지난 10년간 운영돼 왔지만 안전문제나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난달에는 미국령 괌의 앤더슨 공군기지를 찾아가 ‘전자파 문제는 없다’는 결론을 내놓았다.

정부 노력을 폄하하고 싶지 않지만, 이게 맞나 싶다. 사실 전문가들도 전자파 영향에 대한 의견들이 조금씩 다르다. 군사용 전자파는 괜찮다거나 발사 각도가 높아 아무 영향이 없다는 전문가들도 있고, 전자파의 장기노출 영향은 과학적인 결론이 내려지지 않았다고 말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전자파가 이토록 문제라면 국가 최고 연구기관과 전문가들이 상세한 설명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 일부의 주장처럼 과학적 결론이 내려지지 않은 미지의 영역이라면 정부가 나서 “국가 연구역량을 총동원해 전자파 영향을 밝히겠다”고 약속하는 ‘패기’라도 보여주면 좋겠다.

우리나라는 스마트폰을 세계에서 가장 잘 만드는 국가이고, 스마트폰도 미량의 전자파를 배출한다. 사드 때문이 아니더라도 전자파 연구는 필요한 일이다. 모든 걸 외국에서 배워야 했던 1970년대도 아니고, 바야흐로 ‘대한국인’ 시대를 맞았으니, 전자파 연구 정도는 우리 손과 머리로 해보면 좋겠다.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참고로 올해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은 18조9000억원이다.

남도영 사회부장 dy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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