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배병우] 오바마의 치명적 오판 기사의 사진
임기 말이 다가올수록 정치지도자들이 가장 의식하는 게 역사의 평가다. 자신의 임기가 후세에 어떻게 기록될지, 자신이 공들인 사업은 지속될지 끊임없이 자문한다. 임기 종료가 5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행보에서도 이 같은 조바심이 느껴진다. 미국 내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그가 지난 5월 원자폭탄이 투하된 일본 히로시마를 방문한 것도 ‘유산 쌓기(legacy building)’의 일환이라는 분석이 많다. 그가 추구해 온 ‘핵 없는 세상’ 원칙을 공고히 하려는 노력이라는 것이다.

오바마를 안도하게 하는 청신호는 있다. 2∼3년 전 40%대 초반에 고착됐던 지지율이 최근 53∼54%로 치솟았다. 8년 임기 전체를 통틀어 가장 높은 수준이다. 2차 대전 이후 미국 대통령 중 가장 인기 높은 로널드 레이건의 임기 후반에 견줄 만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오바마가 후임에게 넘겨줄 유산은 적지 않아 보인다. 이란 핵협상 타결, 쿠바와의 국교 정상화, 오바마케어(건강보험개혁법) 실행, 미국 경제의 회복….

그러면 그가 남길 ‘부(負)의 유산’은 없는가. 필자 생각에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 탄생에 일정 부분 그의 책임이 있다는 주장이 퇴임 이후에도 오바마를 끊임없이 괴롭힐 것이다. 이미 리언 패네타 전 국방장관은 2012년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정부에 맞서 싸우는 온건 반군의 무장화를 촉구했지만 이를 거부한 오바마를 강력 비판한 바 있다. 무엇보다 지난 5월 공영방송 PBS가 방영한 다큐멘터리 ‘IS의 비밀의 역사’는 오바마의 어떤 해명도 무색하게 만들 만큼 결정적이다. 다수의 기자와 중앙정보국(CIA) 관계자들에 따르면 당시 국방장관 패네타, 국무장관 힐러리 클린턴, CIA국장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등 3대 외교안보기관 수장들이 한목소리로 온건 반군들이 간절히 요청하던 무기를 공급할 것을 건의했다. 하지만 오바마는 이를 따르지 않았다.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정치적인, 너무나 정치적인’ 오바마의 모습이다. 그의 대선공약 1순위는 이라크·아프가니스탄전 종료였다. 시리아 내전에 개입하면 이 약속을 어겼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는 정치적 계산이 광범위한 정보와 베테랑 전문가들의 중론을 압도했다. 1년 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오바마가 입장을 번복했을 때 온건 반군은 이미 괴멸된 뒤였고 그 공백을 IS가 채웠다. 그가 좌고우면한 파장은 실로 재앙에 가깝다. 중동 전역은 물론 유럽 아프리카 미국 아시아까지 IS의 테러 공포에 떨고 있다. 난민 사태, 브렉시트, 유럽의 극우 준동, 미국의 ‘트럼프 현상’ 등이 모두 직간접적으로 IS의 확산과 연관돼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이제 역사의 평가를 의식할 시기에 접어들었다. 퇴임 이후 박 대통령의 ‘부의 유산’으로 거론될 사안은 무엇일까. 박 대통령은 대북 전략의 주요한 축으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내세웠다. 하지만 남북 간 대화를 통한 신뢰 회복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의 외교안보 분야 실책을 든다면 이것이 가장 앞자리에 놓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신뢰프로세스의 불발 원인이 비핵화를 포기한 북한에 있다고 반박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북한이 겉으로는 핵·경제 병진노선을 천명하면서도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보인 때가 2014년 초 등 수차례 있었다. 여기에는 신형 대국관계에 따라 한반도 정세의 안정적 관리 능력을 입증해야 할 중국의 압력도 작용했다. 박 대통령이 남북 간 신뢰 회복에 소극적이었던 이유가 보수층의 이반 등 정치적 위험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정말 그렇다면 오바마와 박 대통령은 닮았다. 너무 정치적이라는 점에서.

배병우 논설위원 bwb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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