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강주화] 사드 배치 이후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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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필리핀 마닐라에서 대규모 시위가 전개됐다는 외신이 있었다. 사진 속 시민들은 ‘마르코스는 영웅이 아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있었다. 현 대통령에게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1917∼1989)의 유해를 국립묘지 영웅묘역에 안장키로 한 결정을 철회하라고 요구하는 것이었다.

어느 해 여름 취재 현장에서 만났던 필리핀 청년 P가 떠올랐다. 기득권층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던 그도 시위대 속에 있을 것만 같았다. P는 그때 내게 “한국의 역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긍정적인 답변을 했다.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한국의 발전은 미국 때문에 가능했다. 미국은 소련과의 이념 대결 차원에서 한국을 지원했다. 현재도 한국은 미국의 영향력 아래 있다.” 이 말의 함의를 전혀 모르진 않았지만 우리의 민주화운동 역사를 거론하며 애써 반박했다. 내 머릿속엔 ‘미국의 식민지였던 필리핀이 더 큰 영향을 받았겠지. 공용어도 영어잖아’가 맴돌았다. 그날 대화는 “넌 (역사) 공부를 좀더 할 필요가 있다”는 P의 충고로 끝났다.

그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하진 않지만 한국이 미국과 밀접한 건 대부분 인정한다. 한미연합사령관은 우리 군에 대한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을 갖고 있다. 우리는 또 미군 주둔의 대가로 매년 수천억원의 방위비를 부담한다. 이에 비해 필리핀은 미군 주둔 시기 기지사용료를 받아왔고 1991년 미군 주둔 연장안을 부결하면서 미군이 철수했다. 자국 군대의 전작권을 외국인 사령관에게 맡기고, 거액의 방위비까지 내는 한국 모습은 P의 시선에선 자주성이 훼손된 것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필리핀은 약 4세기에 걸쳐 스페인, 미국, 일본의 지배를 차례대로 받았지만 국내 정치의 중심에는 독립운동가가 있었다. 초대 대통령인 에밀리오 아귀날도는 스페인과 미국을 상대로 독립운동을 했던 인물이다. 마르코스도 항일운동을 했다. 우리의 경우 김구, 여운형 등 대표적인 항일 독립운동가가 광복 이후 암살됐다. 초대 대통령은 친미 인사로 분류되는 이승만이다.

외교 현안을 보면 한국의 ‘불운’에 개입했던 미국의 모습이 확연하다. 그동안 일본은 식민지 지배에 대한 한국의 대일 배상청구권이 소멸했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1965년 한·일 합의가 그 근거다. 지난해 말에야 겨우 한국의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10억엔을 낸다고 했다. 일본이 과거사 반성에 미온적인 데는 미국이 일조했다.

미국은 1945년 패망한 일본에서 군정을 실시하는 동안 도쿄 전범재판을 진행했다. 일왕 히로히토는 면책됐고, 수뇌급 7명만 교수형에 처한 뒤 나머지는 석방했다. 특히 미국 등에 대한 침략만 추궁하고, 가장 큰 피해를 본 우리나라를 비롯해 아시아 각국에서 저지른 일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 않았다. 당시 찰스 월로비 연합군 최고사령부 장군이 “이 재판은 역사상 최악의 위선”이라고 폄하한 이유다. 미군정은 또 1950년 전범과 관련해 공직에서 추방됐던 10만여명을 사면하고, 이들을 ‘반공’의 협력자로 각계각층에 세웠다. 이런 일본이 과거를 반성할 가능성은 낮다. ‘미국은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지배적 지위를 인정한다.’ 1905년 일본과 미국이 체결한 가쓰라-태프트 밀약의 세 번째 조항이다. 이 협약 후 일본이 한반도 식민지배를 노골화하고, 미국이 필리핀을 영유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한·미 양국 군 당국이 지난달 8일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TAHHD)를 배치하겠다고 발표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북한의 도발로부터 우리 국민을 지키기 위한 자위권적 조치”라고 말했다. 과거가 보여주듯 미국의 조치가 자국의 이해나 전략에 관계없이 우리에게 안보라는 이익을 안겨주진 않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사드 배치가 신(新)냉전을 촉발할 것이라는 우려 섞인 전망을 한다. 미국과 일본을 한 축으로 하고 중국과 러시아를 또 다른 축으로 하는 대결이다. 양측이 한반도를 중심으로 군사 경쟁을 가속화하면 한반도의 긴장이 높아지고 그만큼 우리 민족의 앞날은 어두워질 것이라는 논리다. ‘전환시대의 논리(1974)’에서 국제정세를 날카롭게 분석했던 고 이영희 선생은 “우리와 일본, 우리와 미국의 관계는 어느 선까지는 공동의 이익이 되고 어느 선을 지나면 분단된 민족의 화합과 통일의 염원에 어긋나는 국면이 있다”고 했다. 사드 배치는 어디에 해당할까. 혹시 한반도 분단을 고착시키는 국면이 되는 건 아닐까.

글=강주화 종교부 차장 rula@kmib.co.kr, 삽화=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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