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한민수] 호남 전성시대 기사의 사진
개인적 경험으로 볼 때 1980년 이후 한국 정치사에서 호남이 크게 요동친 경우가 두 번 정도 있었다. 87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가 노태우, 김영삼 후보에게 밀려 3위로 낙선한 직후가 그 첫 번째다. 인구수에서 도저히 영남을 따라잡을 수 없다고 토로한 다수의 호남인들은 정관수술을 풀어 아이를 더 많이 낳거나, 아예 따로 ‘전라도 공화국’을 세우자는 격한 말로 분노를 표출했다.

10년 뒤 김대중 대통령이 탄생하자 갑자기 서울에 호남 사람이 늘었다. 한 고위 공직자의 고향이 전북 전주인 것도 그때 알았다. 본인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었다고 했지만 주변 호남인들은 배신감을 느꼈다. 이런 공무원이 꽤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전남 목포 사람이 서울에 그리 많이 살고 있는지도 몰랐다. 한동안 ‘목포의 눈물’ ‘목포는 항구다’가 노래방을 휩쓸기도 했다.

그리고 20년 가까이 흐른 2016년, 여의도에서 ‘호남 전성시대’가 회자되고 있다. 정세균 국회의장(전북 진안), 심재철·박주선 국회부의장(각각 광주, 전남 보성) 등 호남 출신이 국회의장단을 장악한데 이어 전남 곡성에서 태어난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이 최초로 보수정당의 대표가 되자 부각된 것이다. 여기에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은 전남 진도가 고향이고,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대위 대표는 조부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이 전북 순창 출신인데다 본인은 광주에서 초·중학교를 다녔다. 가히 ‘호남 정치인 전성시대’라 불러도 무방할 만하다. 또 더민주 당대표 주자들이 서로 질세라 호남을 챙기겠다고 부르짖고 있으니 당분간 이 지역 사람들이 홀대받는 일도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미래 권력’인 대선으로 눈을 돌리면 상황은 달라진다. 야권의 문재인(경남), 안철수(부산), 박원순(경남), 안희정(충남)은 물론 여권 반기문(충북), 김무성(부산), 유승민(대구) 등 유력 후보군에 호남 인사가 없다. 따라서 내년까지 호남 전성시대가 유지될지는 미지수다.

무엇보다 가뜩이나 작은 땅덩이에서 특정 지역을 띄우거나 무시하지 말고 모두가 잘사는 나라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지역 구분 없는 ‘한국 전성시대’ 말이다.

글=한민수 논설위원, 삽화=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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