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공방] <67> 영화 ‘터널’, 우리시대의 자화상 기사의 사진
영화 ‘터널’의 한 장면
뻔할 것 같았던 영화가 뻔하지 않게 굴러가고 있다는 사실을 직감한다. 잊는다는 것, 잊히는 것, 버린다는 것, 버려진다는 것의 의미를 천천히 음미하게 된다. ‘터널’은 재난 영화다. 개통 한 달 만에 터널이 붕괴되어 고립된다. 자동차 영업사원 하정우는 몸도 가누기 힘든 터널 속에서 35일 동안 사투를 벌인다. 그간 관객은 터널 안과 밖의 상황을 동시에 들여다본다. 영화는 관객들에게 감정 이입의 끈을 결코 놓지 않게 한다. 내가 하정우였다면, 하정우가 우리 가족이었다면, 하정우의 아내 배두나의 입장이었다면, 사고대책을 책임지고 있는 해당 부서의 장관이었다면, 불의를 참지 못하고 매몰자와 함께 사투를 벌이는 구조 대장이었다면. 이 담담하고 탄탄한 서사의 원천은 영화 도처에서 정교하게 엮인다. 2014년 칸 국제영화제 감독주간 초청, 제35회 청룡영화상 각본상을 수상한 김성훈 감독의 섬세한 감각의 더듬이는 관객의 가슴까지 깊숙이 닿는다. 김성훈 감독의 탁월한 연출력은 전작 영화 ‘끝까지 간다’가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데 고개가 끄덕여지게 한다.

지난 20일 현재, 500만 관객이 영화 ‘터널’을 보았다. 붕괴된 터널 속에서 우리는 우리시대의 자화상을 들여다본다. 그간 영화 같은 일들이 현실에서 무차별적으로 벌어졌고 우리는 어떠한 대응과 개선을 맛보지 못했다. 지리멸렬한 반복이 이어졌다. 숱한 무력감을 맛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무엇 하나 나아진 게 없다. 작지만 다부진 자부심을 가질 만한 것이 없다. 아직도 우리 모두는 바닷속에 침몰한 터널 속으로 다가서지 않는다. 복구하지 못하고 있다. 희망의 끈을 놓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 출구를 닫게 된다. 터널 속 하정우는 바로 우리 자신과 동일인이다. 타인이 아니다. 재난 현장에서 사투를 벌이는 구조대장 오달수의 한마디가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저기요, 터널 속에 벌레가 아니라, 사람이 아직 살아 있어요. 사람이.”

강태규(대중음악평론가·강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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