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아인의 친구로 죽는 날까지 복음 전할 것”… 노량진농인교회 최호식·김애식 목사 부부 이야기

“농아인의 친구로 죽는 날까지 복음 전할 것”… 노량진농인교회 최호식·김애식 목사 부부 이야기 기사의 사진
최호식(왼쪽) 김애식 목사 부부가 지난 19일 서울 동작구 장승배기로 노량진농인교회에서 수화로 ‘사랑합니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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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아인이었던 사촌오빠를 보며 성장한 소녀는 유독 장애인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서울장신대에 입학한 뒤에는 수화를 열심히 배웠다. 사촌오빠와 소통하기 위해서였다. 성경을 영어처럼 어려워하는 농아인들을 보며 이들을 위한 선교의 꿈을 키워나갔다. 4학년이었을 때 2학년으로 편입한 한 농아인이 눈에 띄었다. 유머가 많았던 그는 실수해도 훌훌 털어버리는 낙천적인 사람이었다. 같은 비전을 품고 결혼한 그들은 농아인선교 사역을 시작했다.

서울 동작구 장승배기로 노량진농인교회에서 지난 19일 만난 김애식(52) 최호식(51) 목사 부부의 이야기다. 눈빛만 봐도 상대가 무슨 말을 하는지 훤히 아는 사이처럼 보였다. 인터뷰 내내 김 목사는 남편 최 목사를 위해 늘 그래왔듯 수화를 통역했다. 최 목사는 시종일관 순수하고 밝은 표정이었다.

부부는 지난 13일 제31회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육상 종목에 출전한 큰 아들 최병광(25·삼성전자) 선수의 경기 동영상을 보여줬다. 평소 운동 매니아라는 최 목사는 수화를 통해 “다리 컨디션이 좋지 않아 기록이 평소보다 부진해 안타까웠다. 그래도 아들이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완주해 자랑스럽다. 다음 기회에 더 잘 준비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하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바늘과 실’ 같은 이들 부부는 농아인선교에 있어 최고의 파트너다. 어릴 때부터 장애를 갖게 된 최 목사는 농아인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통로다. 김 목사는 농아인과 일반인이 소통할 수 있도록 수화로 통역하며 이들의 간격을 좁혔다.

부부는 결혼 후 서울 신일교회를 거쳐 1991년 태백농아인교회를 개척했다. 강원도 태백시 예수원 인근에 ‘태농원(태백농아기도원)’을 설립, 가족 모두 농아인들과 공동체생활을 했다. 당시에는 농아인의 신학교 입학이 매우 어려웠던 터라 태농원에서 직접 농아인신학교를 운영했다.

부부는 1997년 노량진농인교회의 모태가 되는 노량진교회 농아부 사역을 위해 서울로 돌아왔다. 노량진교회는 2000년 노량진농인교회로 독립했다. 이때부터 교회는 농아인을 위한 수화교실 운영 등의 사역을 이어오고 있다. 20여명 모이는 작은 교회이지만 농아인을 섬기는 사역의 열정은 여느 교회 못지않다. 2010년부터 천안농인교회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는 최 목사는 한국 중국 일본 베트남 등 10여 국의 수화를 구사할 수 있다. 그는 이 ‘달란트’로 매주 금요일 노량진농인교회에서 ‘수화 통역사반’을 강의한다.

부부가 20년 넘게 농아인선교를 힘 있게 이어올 수 있었던 비결 가운데 하나는 든든한 ‘가정’이다. 그러나 결혼을 결심한 순간부터 가족의 반대 등 고난이 적지 않았다.

“부모님은 큰딸이 농아인과 결혼한다고 하자 많이 반대하셨어요. 첫 아이를 낳기 전까지 친정과 왕래를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였죠. 제가 24세, 남편이 23세에 결혼한다고 했으니 이런 저런 걱정도 많으셨을 거예요. 여러 식구들이 남편에게 ‘무엇을 하고 살 거냐’고 물어본 게 결국 남편의 소명을 앞당기는 계기가 됐고요(웃음).”

힘들게 결혼했지만 가정생활이 늘 순탄했던 건 아니다. 때론 남편과도 소통이 힘들어 답답했고 재정문제 등 크고 작은 어려움들이 있었다. 김 목사는 그때마다 하나님이 주신 자녀들이 잘 성장하는 걸 보며 많은 위로를 받았다. 그는 “자녀들을 볼 때마다 저 혼자 축복 받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처음엔 한 명도 낳지 않을 생각이었다.

“남편이 설득해 첫째를 낳았는데 너무 예쁘고 건강해 이 정도면 더 낳아도 되겠다는 싶었죠. 그래도 5명이나 낳을 줄은 몰랐어요. 자녀는 예상치 못한 하나님의 선물이자 기업이에요.”

아이들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구김살 없이 잘 성장했다. 둘째는 한양대에서 광고홍보학을 공부하고 있고 셋째는 부천시청 소속의 육상선수다. 셋째는 첫째와 함께 2020년 도쿄 올림픽에 함께 출전하기를 꿈꾸고 있다. 고명딸인 넷째는 한영외고를 졸업, 이화여대 중국어학과에 진학했다. 막내는 안양예고에서 바이올린을 배우고 있다.

자녀들은 누구보다 장애인을 향한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다. 장애인 친구들을 만나면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김 목사는 “아이들은 어릴 때 말보다 먼저 수화를 아빠에게 배웠다”며 “엄마랑 아빠가 싸우면 애들은 무조건 아빠편이다. 그만큼 아빠를 잘 따르고 좋아한다”고 웃었다.

김 목사 가정의 목표는 죽을 때까지 농아인의 친구로 함께하며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김 목사는 인터뷰 말미에 기사로 꼭 전해 달라며 이렇게 말했다.

“한국교회가 농아인선교를 위해 헌신한 부분이 많습니다. 세계농아인대회 등을 한국인이 주도할 정도로 키워주셨어요. 많은 성도들이 지원하고 기도해주신 덕분입니다. 이 기도를 계속 이어나가 농아인을 잘 섬기는 가정이 되겠습니다.”

글=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 사진=강민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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