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공병호] 전기요금만 문제가 아니다 기사의 사진
이번 여름은 참으로 덥다. 집에서 어린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은 혹독한 여름이었다는 표현을 사용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무엇이든 아껴 쓰는 것이 좋은 일이지만, 누진제가 적용되는 가정용 전기는 가혹한 요금제로 비난받아도 싸다. 이달 요금 통지서부터 ‘악’하는 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올 것으로 본다.

어떻게 이런 제도가 지금까지 존속할 수 있었을까. 해마다 여름이면 에어컨 때문에 전력 예비율이 위협받는 사항을 예상하면 이해가 되지 않는 법도 아니다. 하지만 제도 이면에는 더 깊은 뜻과 의도 그리고 관성이 숨어 있다. 1960년대 우리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나라의 경제를 일으켜 세우던 시절부터 우리 사회는 한 가지의 뚜렷한 공감대를 갖고 있었다. ‘기업에 좋은 것은 나라에 좋은 것이다.’ 지금이라고 해서 이런 믿음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 모든 정책과 제도가 기업을 우선적으로 육성하는 쪽에 초점을 맞추었다. 역금리 제도라고 해서 대출금리가 예금금리보다 싼 적도 길었다. 정책금융이나 수출금융을 통해 장기 저리로 기업들을 지원하고 육성하였다. 기업 육성에 도움이 된다면 다른 분야의 출혈은 아무 문제가 아니었다. 이런 기업 육성책을 통해 우리는 눈부시게 성장했고 이 정도의 생활수준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그 당시 우리가 선택했던 차별적 기업 육성책은 의미가 있었고 나름의 성과를 크게 거둔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일단 한번 만들어진 제도는 좀처럼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이다. 기업우대 정책은 누군가의 비용 부담을 요구한다. 가장 큰 희생을 하는 그룹은 가계다. 전기료만 하더라도 산업과 농어민에게 상당한 특혜를 제공한 쪽으로 요금제가 채택되어 있다. 세상에 공짜가 없듯이 그런 특혜를 제공하는 비용의 상당 부분을 가계가 떠맡는 제도가 현재와 같은 가혹한 누진제이다. 흥미로운 것은 특혜를 보는 쪽은 확실한 이익단체를 갖고 있다. 이들은 각종 정책 제언 등을 통해서 정부를 설득할 수 있기 때문에 이따금 지나치게 산업계에 유리한 요금 체제에 대한 비난이 일더라도 금세 사라져 버리게 된다. 하지만 가계들은 익명의 다수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자신들의 전기료를 낮추기 위해 조직적인 로비 활동을 벌일 마땅한 단체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1960년대나 70년대에 만들어진 특정 그룹을 우대하는 정책은 아무런 손질을 보지 않은 채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제도가 전기료에만 해당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솔린이나 석유 등과 같은 에너지 가격도 우리나라는 승용차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만 지나치게 가혹하다. 엄청난 세금이 부과되니 상당한 부담을 가계에 떠넘기는 제도임에 틀림없다.

이제 한국은 성장률 2%대의 저성장 사회로 진입하기 시작하였다. 가계의 지갑들은 얇아지고 있지만 조세나 준조세 성격의 부담은 크게 나아질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 고속성장 시대에 만들어진 제도들을 과감하게 고쳐야 할 시점이 되었음을 인식해야 한다. 생활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들을 취해야 할 시점이다. 전기료 누진제 개선 작업은 우는 아이들에게 젖 한 번 더 준다는 식으로 몇 만원을 깎아주는 선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 지나치게 한쪽으로 기운 무게중심을 회복시켜서 생활인들의 삶을 개선하는 쪽으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시대가 바뀌고 세월이 바뀌면 정책이나 제도도 바뀌어야 한다. 주거비, 교육비, 전기료, 가스비 등 우리 사회 곳곳에 알게 모르게 자리 잡은 기업 우대, 가계 홀대 정책을 수선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올바른 일이기도 하고 정의로운 일이기도 하다.

공병호 공병호경영硏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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