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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자로서의 목사 위치 다시 찾으려면…

목회자란 무엇인가/케빈 밴후저·오언 스트래헌 지음/박세혁 옮김/포이에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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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목회자가 강단에서 말씀을 전하고 있다. 목회자는 다양한 사람들에게 신학자로서 말씀을 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국민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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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신학은 흔히 ‘지도’로 비유된다. 성경의 다양한 내용을 일정한 비율로 줄여 이를 약속된 기호(신학언어)로 나타낸 그림과 같다는 것이다. 이 신학 지도는 목회자나 신학교수뿐 아니라 평신도 역시 필요하다.

문제는 지도를 잃어버릴 때다. 그 상실의 결과는 지금 한국과 미국의 교회 등이 방향을 잃은 이유가 될 수 있겠다.

이 책의 저자들은 한걸음 더 나아가 오늘의 교회는 지도를 분실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현대적 기법과 (신학을) 맞바꿔버렸다고 진단한다. 이를 야곱의 큰아들 ‘에서’의 부주의함에 빗댄다. “많은 목회자들이 자신의 소명적 장자권을 경영 기법과 전략 계획, 리더십 강좌, 심리요법 따위의 팥죽 한 그릇에 팔아버렸다.” 그렇다고 이 책이 실종된 신학의 문제를 파헤치거나 ‘○○에 물든’ 기독교를 질타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신학이 본래 있어야 할 자리를 다시 한 번 상기시키는 데 주력한다.

‘공공신학자로서의 목회자(The pastor as public theologian)’란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신학자로서 목사의 위치를 다시 찾자는 강력한 호소를 담고 있다. 이를 위해 성서신학과 역사신학, 조직신학과 실천신학을 활용해 목회자는 곧 신학자라는 사실을 재천명하고 있다. 논증은 구체적이며 간절하다.

저자는 목사가 공공신학자라고 전제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공공신학’은 맥스 스택하우스가 주창한 ‘공공신학(public theology)’과는 달리 표현된다. 이 책이 말하는 공공신학이란 신자들의 모임을 포함한 다양한 사람들을 위해 공적 광장에서 공적 메시지를 전하는 증언이다. 목회자는 바로 이 공적 광장에서 고유한 역할을 수행하기에 공공신학자라는 것이다.

교회는 공적 공간이다. 목사는 이 공적 공동체 안에서 회중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존재가 되도록 돕는다.

저자에 따르면 목회자는 철학과 사회적 중요성을 지닌 문제, 예를 들면 삶의 의미에 관해 말할 수 있는 특정한 종류의 지성과 권위를 주장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 ‘공적 지식인’으로 명명했는데 공적 지식인은 사회의 궁극적 관심사에 해당하는 광범위한 주제에 관해 의미 있고도 진실하게 말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지식인이라고 해서 천재일 필요는 없다. 거대한 진리를 현실의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법을 알고 있는 특정한 종류의 보편적 지식인이면 된다. 공적 지식인이라는 관점에서 목회의 성공이란 교인수나 프로그램, 재정 규모로 결정되지 않는다. 하나님에 대한 앎과 사랑에 관해 사람들이 얼마나 자랑하는가에 의해 결정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저자는 신학자로서의 목회자 ‘제자리 찾기’를 위해 옛 언약의 담당자였던 ‘제사장, 예언자, 왕’이라는 삼중직 개념을 활용했다. 사실 이 삼중직은 한국교회 일부 목회자들이 자신들의 제왕적 목회직을 합리화하기 위해 남용한 측면이 있다. 알려진 것처럼 장 칼뱅은 삼중직을 그리스도께서 직접적으로 성취했다고 선언했다. 저자는 그리스도 이후 주어진 ‘새 언약’에 기초해 삼중직을 목회직과 연결짓는다.

예를 들어 왕으로서의 목회자는 왕 되신 예수의 직분에 참여하는 것으로 설명된다. 그런데 예수의 왕국은 힘이 아니라 십자가의 약함에 근거한다. 왕 된 목사들은 섬길 뿐 아니라 죽기까지 낮아짐으로써 십자가에 달리신 성서적 본보기를 배운다.

책의 결론은 각 장의 핵심 논제를 요약해 ‘공공신학자로서의 목회자에 관한 55개 논제’라는 이름으로 정리했다. 각 장마다 ‘목회적 관점’이란 코너도 배치했는데 가독성 높은 내용이 많다. 그 중 하나인 ‘목회자-신학자가 되기 위한 실천 6단계’를 보자. ‘같은 뜻을 지닌 직원을 고용하라’ ‘네트워크를 이루라’ ‘공부하는 시간에 우선순위를 부여하라’ ‘교회 지도자들의 동의를 얻으라’ ‘신학이 교회를 위해서, 무엇보다 먼저 당신의 교회를 위해서 존재함을 잊지 말라’ ‘당신이 일하는 곳을 사무실이라고 부르지 말고 서재라고 부르라.’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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