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가 풍년입니다 농사 비결은 헌신과 섬김이죠

박국양·조태례 부부 집사 노숙인·출소자 위한 ‘푸른들 가족공동체’

고추가 풍년입니다 농사 비결은 헌신과 섬김이죠 기사의 사진
박국양(뒷줄 왼쪽 두 번째)·조태례(앞줄 가운데) 부부가 지난 24일 충남 당진 ‘푸른들 가족공동체’ 구성원들과 함께 직접 기른 고구마를 캐며 수확의 기쁨을 누리고 있다.

이전이미지다음이미지

충남 당진에는 아주 특별한 전원주택형 건물이 있다. 일반적인 펜션이나 리조트처럼 보이지만 그게 아니다. 바로 ‘푸른들 가족공동체’다. 노숙인과 출소자 등 사회취약계층이 생활하는 3층짜리 아름다운 공간이다.

지난 24일 이곳 마당에선 빨갛게 익은 고추를 따서 말리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뜨거운 햇살에 굵은 땀방울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예순 안팎인 부부의 정성스러운 손길은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2년 전 이 공간을 무상으로 제공한 박국양(61) 가천대 의대 교수와 조태례(57·기독교윤리실천운동 사회복지위원회 부위원장) 가천대 특수치료대학원 겸임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두 사람은 크리스천 잉꼬부부로 서울 구로구 고척교회(조재호 목사) 집사이다.

아내 조 교수의 제안으로 시작된 이 공동체는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고 있다.

“교회와 시민단체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하나님의 뜻이 무언지 생각했어요. 또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고 거리에서 방황하는 노숙인과 교도소 출소자들을 도와야겠다는 사명감을 갖게 됐습니다. 노숙인과 출소자들은 정말 상처가 많으신 분들이에요. 사연을 들어보면 하나같이 절절해요. 이분들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길 함께 기도하며 돕고 있습니다.”

이곳엔 심리회복 프로그램이 있다. 알코올 중독은 물론 재범을 일으킬 수 있는 유혹을 이기지 못하면 언제든지 옛 모습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화가이자 정신보건사회복지사, 미술심리상담사인 조 교수가 지도하는 미술심리 치료는 그래서 중요하다.

‘푸른들 가족공동체’는 다음 달 28일부터 10월 5일까지 서울 인사동 동덕미술관에서 전시회를 갖는다. 구성원들이 직접 그리고 만든 작품 등으로 진행되는 이 전시회의 주제는 ‘미술의 힘 그 치유의 능력’이다.

“미술심리치료와 미술가들의 범죄예방을 위한 관심과 헌신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가 될 겁니다. 노숙인과 출소자들이 얼마나 많이 회복됐는지 직접 오셔서 확인해 주셨으면 해요(웃음).”

재정은 그리 넉넉하지 않다. 박 교수는 병원에서 받은 월급을 만져보지 못할 때도 있다.

“지난해 1만3200㎡(4000평) 정도 되는 밭에서 고구마 농사를 지었어요. 그런데 구성원 모두 농사가 처음이라 그런지 수확량이 거의 없었어요. 믿을 사람은 남편밖에 없어 도움을 청했고 지금까지 가장 큰 후원자로 도와주고 있답니다.”

공동체는 경제적으로 자립을 꿈꾼다. 그래야 더 많은 이들의 자활을 도울 수 있어서다. 그래서 배추, 버섯, 고추 등 여러 농작물을 심고 있다. 당뇨에 좋다고 소문난 돼지감자를 재배해 차로 판매 중이다.

“올해는 고추농사가 잘돼 고추 따느라 정신이 없네요. 하나님이 우리 가족을 눈동자 같이 돌보시는 것이 틀림없어요. 그렇지요?(조 교수 얼굴에선 인터뷰 내내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푸른들 가족공동체’의 또 하나의 목적은 파탄 난 가족의 회복이다. 이곳에서 생활 중인 김영수(가명·56)씨는 최근 가족을 만났다. IMF 외환위기 때 사업 실패로 헤어진 뒤 첫 만남이다. 지난해 이 공동체로 들어와 심리적 안정을 되찾고, 상처도 회복되면서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다음 달엔 가족을 초대해 불고기 파티를 준비하고 있다.

알코올 중독으로 이혼하고 대인관계가 힘든 김창진(가명·51)씨는 이번에 틀니를 하고 나서 방실방실 웃고 다닌다. 농작물을 수확해 번 돈으로 노동의 기쁨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고 털어놨다. 그동안 하지 못한 책읽기도 틈틈이 할 계획이다.

폭력배로 살아온 이진명(가명·64)씨는 이곳에서 크게 달라졌다. 폐가 거의 망가져 생명까지 위험했으나 맑은 공기를 마시며 건강이 많이 회복됐다. 특히 예수를 믿고 성품까지 온순해졌다. 이곳에서 일명 ‘반장’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이날 새로운 가족이 된 강민(가명·60)씨는 “15년 넘게 개망나니 생활을 했다”며 “주로 쉼터를 돌며 생활했는데 여기 오니 왠지 마음이 편해진다. 이번엔 정말 술을 끊고 자활하고 싶다”고 말했다.

입소문이 나면서 입소 대기자들이 줄을 잇고 있다. 하지만 입소를 하려면 자격요건이 있다. 절대 술은 마시지 못한다. 다만 담배는 하루 한 갑 이하로 필 수 있다.

공동체는 매주 주일예배를 드린다. 성경공부와 하루 일과 정리, 살가운 대화를 나누면서 개인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시간을 갖는다. 찬송과 기도가 아침저녁으로 울려 퍼진다.

이 공동체의 총괄실장 및 사회복지사 이주혜(33·여·서울 고척교회)씨는 “노숙인들이 이곳에 처음 왔을 때는 눈 마주침도 어렵고 등을 돌려 대화가 안 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같이 생활하며 조금씩 신뢰가 형성되고 상처받았던 마음을 회복해 지금은 모두 가족같이 지낸다”고 소개했다.

묵묵히 뒤에서 돕고 있는 박 교수는 국내 대표적인 심장수술 전문의다. 의료봉사 활동에도 적극적이다. 현재 하나반도의료연합 이사장을 맡고 있다. 헐벗는 북한과 중국 주민을 돕기 위한 구호단체다. 덕분에 지난해 중국 훈춘시로부터 명예시민증을 받기도 했다.

많은 곳에서 이 공동체를 후원하고 있다. 서울 고척교회는 ‘천사운동’을 벌여 생활관 확장 기금을 전했다. 또 인천석천제일교회는 이곳에서 생산하는 고추와 무, 배추, 파 등을 구입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서울 열방교회와 천북시온교회, 사대악척결운동본부, 기독교윤리실천운동, 가천대, 길병원, 한국미술인협회 등도 후원단체다. 충남자활센터와 중증장애인평생교육원인 우아함 사회적협동조합과 협약을 맺고 있다.

“힘든 시간이 지난 뒤 돌이켜보면 늘 앞길을 예비하신 ‘임마누엘’ 하나님의 사랑을 느껴요. 그래서 더욱 의지할 곳은 하나님이라는 생각을 해요. 저희 부부가 부족하다는 걸 잘 알아요.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시고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는 은혜를 체험하곤 한답니다.”

결혼 34년차 부부는 “아직 부족하다”고 했다. 더 잘 해드려야 하는데 미흡하다는 것이다. 부부는 앞으로 ‘사회적 협동조합’을 만들 계획이다. 구성원 모두가 주인이 되는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다. 서울역 인근에 ‘노숙인 상담센터’도 만들 계획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삶이 묻어나는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당진=글·사진 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