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한민수] 북한 붕괴론 기사의 사진
1997년 1월 8일 김영삼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한 달 새 북한 미그기 3대가 기름 부족으로 떨어졌다”고 말했을 때 정말 북한이 곧 망하는 줄 알았다. 앞서 94년에는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청와대 수석비서관이 북한에서 저항운동이 시작됐다고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외국 대사관이 밀집한 평양 외교단지에 ‘김정일을 타도하자’는 삐라가 뿌려졌다는 것이다. 독일에서 나온 정보라 믿을 수 있다고 했지만 사실은 우리 안기부가 대북 심리전의 일환으로 날려 보낸 삐라였다. 이후 대통령은 “통일은 새벽처럼 온다” “북한은 길어야 3년”이란 말을 자주했다. 이명박 대통령 때도 북한 급변사태를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정권 내에서 꾸준히 제기됐지만 5년 임기 동안 별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심지어 2011년 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급사했는데도 멀쩡하게 넘어갔다.

며칠 전부터 박근혜 대통령이 북한 체제가 붕괴될 것임을 시사하는 발언을 내놓고 있다. 대통령은 공식 회의에서 “주요 인사들까지 탈북과 외국 망명이 이어지는 등 심각한 균열 조짐을 보이면서 체제 동요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했다. 대통령 판단에는 일반인은 모르는 고급 정보가 뒷받침됐을 것으로 믿는다. 가령 안기부 후신인 국가정보원의 정보보고 말이다.

이와 함께 태영호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의 망명도 영향을 미친 것 같다. 하지만 그보다 급이 훨씬 높은, 주체사상의 창시자라는 황장엽 노동당 비서가 97년 2월 망명했을 때도 북한 체제는 무너지지 않았다. 현 정부에서 장관을 지낸 인사도 김정은 정권이 수년 내 붕괴될 것이라는 관측에 회의적 반응을 보였다.

대통령의 언급은 남북한 주민 모두에 ‘우려’를 던졌다. 남측에는 정부가 그런 비상사태에 대해 제대로 준비하고 있는지 걱정이 앞서게 했고, 북한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망한다고 하는 남한 정부가 곱게 보일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공개돼 득 되는 발언은 아닌 게 분명하다. 글=한민수 논설위원, 삽화=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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