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황주리의 나의 기쁜 도시] 볼리비아 포토시 기사의 사진
황주리 그림
가난하지만 풍경의 풍요로움으로 가득한 남미, 그중에서도 꿈에서도 잊히지 않는 도시를 들라면 나는 볼리비아의 전설적인 광산도시 ‘포토시’를 들겠다. 포토시에 가기 전에 그 유명한 볼리비아의 우유니 사막에 가야 한다. 비가 오면 표면이 마치 거대한 거울처럼 변해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땅인지 구분하지 못하게 되는 장관을 연출하는 곳, 그곳에서 비를 만나지 못한 건 유감이었다. 텔레비전에서 몇 번을 보았던 때문인지 꿈같은 우유니 사막은 내게 무척 비현실적인 기분을 자아냈다. 마치 오래된 명화 ‘토탈 리콜’ 속에서 뇌 속에 여행의 기억을 심어주는 환상여행 같은 기분도 들었다. 남한의 십분의 일인 충청남도 넓이에 해당한다는 광대한 우유니 소금 사막은 가도 가도 끝이 없었다.

우유니 소금 사막의 육각형 무늬의 소금 결정체들은 언젠가 오래전에 본 다큐 영화 ‘티벳의 소금장수’를 생각나게 했다. 티벳 여행의 경험 탓에 다른 일행에 비해 볼리비아의 고도는 내겐 견딜 만했다. 내 몸의 기억에 티벳 고도의 기억이 녹아 있었나보다. 소금 호수에 하늘의 구름이 비치면 큰 거울처럼 하늘의 풍경을 담아낸다. 멀리 산들이 섬처럼 보이고, 까마득한 사방이 모두 천연 소금들이다. 밤이 되면 소금 사막에서 별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침낭을 가져와 깔거나 덮고 누워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을 바라본다. 가도 가도 끝없는 독특한 우주, 우유니 사막에서 영원히 살라면 기분이 어떨까?

도시에서 태어나 살아온 사람들은 이내 도시를 그리워할 것이다. 이제 그 전설적인 탄광도시 포토시와 볼리비아의 산토리니라 불리는 수쿠레와 행정도시 라파스를 향해 떠난다. 이상하게도 예술가들은 특히 화가들은 탄광지대와 사막을 그리길 좋아한다. 삶의 애환이 덕지덕지 묻어있기 때문이리라. 남미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볼리비아는 화가들이 사랑하는 탄광과 사막을 가진 나라다. 수많은 나라에서 화가들이 그림을 그리려고 볼리비아의 은광도시 포토시를 찾아온다. 마치 우리나라 화가들이 그림을 그리려고 강원도 정선 태백 사북의 탄광을 찾아가는 것처럼. 해발 4060m의 고산도시 포토시는 1525년 은맥이 발견되면서 100년 넘게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은광이 있었던 곳이다.

그곳에 정착한 스페인 사람들은 원주민들을 몇 대에 걸쳐 은광의 광부로 부려먹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로 명성이 났던 포토시는 무분별한 채굴로 은광이 바닥나면서 급속히 쇠락했다. 탄광에서 사고로 목숨을 잃은 그 많은 사람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정선과 태백과 사북의 탄광들이 화가에게 끝없이 삶과 노동의 아름다움을 일깨우는 것과는 다르게, 포토시는 고풍스러운 중세도시의 매력을 여전히 발산하고 있다. 골목마다 세월의 두께로 묻어있는 신비한 색채감각은 걷는 일만으로도 행복감을 느끼게 한다. 한 발짝 내디딜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렸던 골목길들의 추억이 오늘 지금 이 순간에도 내 가슴을 떨리게 한다. 그렇게 아득히 낡아 아름다운 건물들의 기억 뒤편에 포토시의 수많은 광부들은 아직도 광부로 살아가고 있다. 아버지가 쓰러지면 가족을 먹여 살리느라 어린 아들이 광부가 되어 은광으로 들어가는 악순환을 되풀이하고 있다.

평균 수명 35세의 소년 광부들이 오늘도 묵묵히 삶의 무게를 감당하며 살아가는 곳, 그곳의 모든 골목이 박물관인 포토시 골목골목을 걸으며 정선의 ‘삼탄 아트마인 박물관’이 떠올랐다. 폐광을 아름다운 박물관으로 만든 삼탄 아트마인의 막장으로 들어가는 지하 철길에는 광부들의 노동에 바치는 꽃들이 곳곳에 놓여 있고, 영화 ‘글루미 선데이’ 속 암울하고 장엄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30년간 세계 150개국을 다니며 모은 10만점의 예술 수집품들로 독특한 탄광 박물관을 만든 김민석 대표는 경제난으로 몇 년 전 자살했다. 그곳에 며칠 묵으며 전람회를 열기도 했던 터라 유난히 걱정이 많아 보였던 그의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폐광 입구에 씌어 있는 ‘아빠 오늘도 무사히’라는 글귀들이 눈앞에 생생하다. 그 먼 나라 볼리비아에서 우리나라의 탄광 풍경을 떠올리니 세상은 다 연결되어 있는 가슴 아픈 우주였다. 관광지로 변한 사북 폐광에 들어서면 이런 표어들이 붙어 있다. ‘갱내서는 휘파람을 불지 않는다. 광부 남편 도시락을 쌀 때는 절대로 4주걱은 싸지 않는다(4라는 숫자가 죽음을 의미하므로). 초등학교 아이들이 시냇물은 원래 까맣다고 얘기하였다.’ 매몰자 가족 대기실이라고 씌어 있는 표지판도 눈에 띄었다. 그렇게 우리의 탄광들은 슬픈 그림자를 지닌 옛이야기가 되었지만 볼리비아 포토시 소년 광부들은 오늘도 고된 삶을 이어가고 있다. 포토시는 그렇게 나의 기쁜 도시, 하지만 슬픈 도시로 남았다.

황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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