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맹경환] 수치 여사, 중국 過信 마시라 기사의 사진
아웅산 수치 여사는 국가자문역 겸 외무장관이라는 직함을 갖고 있지만 민주화운동 시절 여사라는 호칭이 여전히 익숙하다. 아들이 영국 국적이라 ‘배우자나 자녀가 외국인인 경우에는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헌법 조항 때문에 대통령이 못 됐을 뿐 미얀마의 최고 실권자다.

수치 여사는 첫 해외 방문국으로 중국을 선택했다. 미얀마 민주화·인권의 상징과 공산당 일당 지배 중국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더욱이 중국은 미얀마 군부 독재 정권을 지원해 왔고 현재도 수치 여사의 노벨 평화상 동료인 류샤오보가 감옥에 갇혀 있는 나라가 아닌가.

형식과 의전을 중요시하는 중국이지만 미국보다 먼저 중국을 방문한 수치 여사에게 정상급 예우로 고마움을 표했다. 지난 17∼20일 닷새간의 중국 방문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리커창 총리를 모두 만났다. 중국 언론들은 “미국보다 중국이 먼저”라며 환호성을 질렀다.

수치 여사의 중국 방문은 국익 우선과 실용주의로 대표되는 현대 외교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미얀마는 경제 재건을 위해 중국의 돈이 필요하고 반군과의 평화 협상을 위해 중국의 정치적 지원도 필요하다. 오랜 친구 미국이 말은 안 해도 이해해 주리라는 믿음도 방중에 나선 수치 여사의 어깨를 가볍게 했을 수도 있다.

수치 여사의 실용 외교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중 외교를 떠올리게 한다. 박 대통령은 2013년 6월 중국을 방문했다. 미국은 먼저 방문했지만 전임자들과 달리 일본보다 중국을 먼저 선택했다. 이명박 정권의 친미(親美)외교에서 벗어나 중국에 다가선 것이다. 한·미·일의 끈끈한 고리를 끊고 싶어 했던 중국은 반겼다.

지난해 한국은 미국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가입하고, 9월 3일 박 대통령은 시 주석과 함께 천안문 망루에 올라 중국의 항일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70주년 열병식을 지켜봤다. 한·중 관계의 절정을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덕분에 나는 북·중 접경 지역에서 허가 없이 카메라를 눌렀다가 공안에 붙잡혔는데도 “박 대통령이 중국에 많이 오지 않았냐”는 말을 들으며 별 탈 없이 풀려나기도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양국 관계의 진면목을 보여준 계기는 북한이었다. 올 초 북한의 4차 핵실험 뒤 한국과 중국의 핫라인은 불통이었고 두 정상이 통화한 것은 한 달이나 지난 뒤였다. 시 주석은 “한·중은 역대 최고 우호 관계로 발전했다”고 했지만 한국이 정작 필요로 할 때는 머뭇거렸다. 우리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THAAD) 배치 계획을 발표하자 중국은 본색을 드러냈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와 관영 CCTV를 필두로 사드 배치를 비판하고 보복을 다짐했다. 느닷없이 원칙대로 한다며 상용 복수비자 발급을 까다롭게 해 한국인들을 애먹였다. 일부 방송사는 한류 스타들의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하고 스케줄을 취소시키는 등의 횡포를 부리고 있다. 중국의 정치체제상 윗선의 말 한마디면 알아서들 따르고 주변에서도 분위기를 맞춘다. 사실상 정부가 뒷짐을 지고 조종하면서 ‘하오펑유(好朋友·좋은 친구)’라던 한국을 협박하고 한국의 자중지란(自中之亂)을 부추기고 있다. 그것도 가장 전시효과가 큰 한류를 통해서 말이다.

다음 달 항저우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박 대통령과 시 주석이 만날 가능성이 높다. 관계 복원을 위한 해법이 나올 수도 있지만 한국 국민들은 이미 중국의 밑바닥을 봐버렸다. 친구라면서도 조금도 손해를 보지 않으려 하고 오히려 보복을 운운하며 협박하는 그런 중국 말이다. 수치 여사여, 중국을 너무 믿지 마시라.베이징=맹경환 특파원 khmae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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