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윤희상 <5> 잇단 좌절 끝 ‘카스바의 여인’ 가요 프로서 대박

노래 부르고 음반도 직접 제작한 ‘옥경이 메들리’ 100만장 판매 기염

[역경의 열매] 윤희상 <5> 잇단 좌절 끝 ‘카스바의 여인’ 가요 프로서 대박 기사의 사진
1집 ‘칠갑산’ 등 3개의 앨범을 연속으로 실패한 윤희상 집사는 1990년 초반부터 직접 음반제작에 참여했다. 음반제작 사업을 시작한 윤 집사의 모습.
많은 사람들에게 곡을 알리려면 그만큼 홍보가 뒷받침돼야 한다. 회사에서 받은 홍보비 등을 갖고 전국 방송국을 찾아다니며 1집 앨범을 알렸다. 그런데 타이틀곡 ‘칠갑산’을 홍보하던 중 대성음반 사장이 홍보곡을 ‘오지 마세요’로 바꾸고 디스코풍으로 다시 제작하라는 것이 아닌가. 허탈했다. 다른 회사에서 다시 음반을 낼까 고민했지만 작사·작곡가 조운파씨의 설득으로 홍보곡을 과감히 바꿨다.

홍보를 많이 하지 못한 1집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회사에서 받은 홍보비가 부족해 가지고 있던 모든 돈을 끌어 써 수중에 돈이 없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할 수 없이 무명가수로 밤무대를 다니며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대성음반에서 연락이 와 두 번째 음반 ‘내 인생 다시 한 번’을 만들었다. 홍보 지원사격이 없었던 2집 역시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1984년 가수 나훈아씨를 만난 나는 그가 운영하는 술집의 영업부장으로 잠깐 일했다. 이후 대성음반에서 또 음반을 만들자는 제의가 들어와 3집 ‘당신의 고독’을 만들었다. 그러나 3집 역시 빛을 보지 못했다.

3개의 음반을 연속으로 실패해 궁여지책으로 제일 잘할 수 있는 게 무엇인가 생각했고 직접 음반을 제작하기로 결심했다. 여러 작곡가들에게 좋은 곡을 받았다. 평소 친분이 있던 나훈아씨에게서 도움도 받았다.

90년 노래도 부르고 직접 음반을 제작한 앨범 ‘옥경이 메들리’를 발표했다. 영업만큼은 대성음반에 맡겨 인세를 받기로 했다. 놀랍게도 이 앨범은 나온 지 일주일이 채 되지도 않았는데 히트를 쳤다. 100만장이 넘게 팔린 ‘대박’ 상품이었다. 이 앨범으로 받은 인세로 92년 ‘카스바의 여인’을 타이틀로 한 앨범을 다시 세상에 내놨다. 1년 동안 홍보를 했지만 크게 인기를 끌진 못했다.

이후 음반제작 사업에 본격 손을 대며 영업에도 참여했다. 지금까지 뿌린 눈물의 씨앗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94년 사업을 시작한지 6개월 만에 음반이 히트를 친 것이다. 갑자기 많은 돈을 벌어 음반제작에 재미를 느꼈고 레코드 회사와 녹음실도 차렸다. 사업이 잘 되니 세상의 쾌락에 빠져 가수의 꿈도, 고생했던 시절도 모두 잊어버렸다.

어느 날 가수들로부터 92년 발표된 ‘카스바의 여인’을 리메이크 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다. 가수 송대관씨는 나에게 2번이나 요청했고, 한 인기가수는 내 허락도 없이 무단으로 곡을 사용해 음반까지 냈다. 다른 가수는 2억원에 그 곡을 팔라고 제의했다.

그러자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다시 가수의 꿈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이미 리메이크된 ‘칠갑산’은 원곡보다 더 유명해진 터였다. ‘카스바의 여인’마저 다른 가수에게 빼앗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곡을 직접 부르기로 결심한 나는 99년부터 공격적인 홍보 활동에 들어갔다. 이 곡은 MBC 주말드라마 ‘남의 속도 모르고’의 OST 중 하나로 삽입됐고, 이듬해부턴 라디오와 TV 등에서 방송을 탔다. 그리고 드디어 결실을 맺었다. 2000년 후반부터 이 곡이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졌고 이듬해 대박을 터트렸다. ‘카스바의 여인’은 가요 프로그램에서 연속 5주 1위를 하는 기염을 토해냈다. 나는 ‘카스바의 여인’으로 부와 명예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가수로서 최고의 정점을 찍은 순간이었다.

정리=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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