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원준 칼럼] ‘비리’와 ‘부패’의 싸움 기사의 사진
청와대 출입기자가 청와대에서 벌어지는 일을 5%라도 안다면 대단히 유능한 것이란 말을 청와대 출입할 때 들은 기억이 있다. 권력의 내부는 그만큼 은밀하다. 온갖 중요한 정보가 모이는 곳이라 그럴 것이다. 그 심처(深處)에서 불거진 ‘우병우 사건’의 내막을 관전자가 속속들이 알기란 결코 쉽지 않다.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돌연 수사를 받게 되고 조선일보 송희영 전 주필이 물러나는 예상치 못한 상황까지 속출하고 있다. 그래도 매일 뉴스를 읽는 직업이기에 관전을 돕고자 두 달 가까이 굴러온 사건을 정리해보려 한다.

#. “너는 비리다” 조선일보의 공격

시작은 조선일보 7월 18일자 보도였다. 우병우 민정수석 처가의 안 팔리던 강남 땅을 넥슨이 사줬다며 비리 의혹을 제기했다. 진경준 전 검사장이 구속된 직후였다. 조선일보는 이 보도가 상식적 의문에서 출발한 거라고 했다. 진경준의 126억원 주식 대박은 누가 봐도 이상한데 어떻게 인사검증을 통과했는지 살펴보니 저런 거래가 있더라는 것이다.

진경준이 우 수석을 도와주고 우 수석이 진경준을 봐주지 않았겠느냐는 의심은 합리적이라고 보인다. 그런데 말 그대로 의혹 제기였다. 반박 못할 결정적 단서나 증거는 담겨 있지 않았다. 이상했던 것은 조선일보에서 이렇다 할 후속 보도가 나오지 않았던 점이다. 권력 핵심을 겨눈 칼치고는 좀 무뎌 보였다. 많은 언론이 뛰어들었고 우 수석 가족회사 정강의 문제, 아들의 의경 복무 문제가 드러났다.

조선일보가 줄기차게 사퇴를 촉구하고 우 수석이 버티는 동안 극우 성향 매체들이 조선일보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여당이 추천한 조우석 KBS 이사는 인터넷 매체 미디어펜 칼럼을 통해 조선일보가 청와대에 민원을 했다가 잘 되지 않자 우 수석을 공격한다고 주장했다. 올인코리아란 매체에는 ‘조선일보, 사감정(私感情)으로 우병우 헐뜯나’란 글이 실렸다.

#. “너는 부패다” 청와대의 반격

청와대가 반격을 공식화한 시점은 지난 21일로 봐야 할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연합뉴스에 “우병우 죽이기의 본질은 임기 후반 식물정부를 만들려는 의도”라며 “부패 기득권세력과 좌파세력이 우병우 죽이기에 나섰지만 입증된 게 없다”고 말했다. 부패 기득권세력이 조선일보를 뜻한다는 건 1주일 만에 확인됐다.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은 두 차례 기자회견을 열어 송 전 주필이 대우조선에서 호화 향응을 받았다고 폭로했다.

김 의원이 제시한 증거는 수사 자료를 보는 것처럼 구체적이었다. 나는 그가 스스로 확보했다고 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다면 막강한 정보력을 가진 정권 핵심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이번엔 진보 성향 언론과 야당이 조선일보를 거들고 나섰다. ‘우병우 물타기’란 비판이 제기됐고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는 ‘청부 폭로’라고 규정했다. 이에 청와대는 30일 송 전 주필이 대우조선 회장 연임 로비를 했었다고 직접 밝혔다.

정권 핵심의 비리 의혹을 제기한 조선일보를 청와대는 부패 세력으로 규정했다. “그러는 너는 얼마나 깨끗하냐”는 식이다. 청와대 관계자가 조선일보를 가리켜 ‘부패’란 표현을 선택한 것은 아마도 조선일보가 청와대를 겨냥해 ‘비리’란 용어를 선점했기 때문일 것이다. ‘비리 권력’이란 프레임과 ‘부패 언론’이란 프레임이 한판 세게 붙었다. 결과가 어찌 되든 한쪽은 치명상을 입을 싸움인데, 하필 그 구도가 ‘독재 대 민주’도 아니고 ‘보수 대 진보’도 아니고 ‘비리 대 부패’로 설정됐다. 경제와 안보 모두 위기라는데 검찰은 비리와 부패의 경중을 가리는 고약한 수사에 착수했다. 잘하기 바란다.

태원준 논설위원 wjtae@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