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윤희상 <6> 지방공연 가던 중 교통사고로 사지마비 ‘날벼락’

영원히 노래 부를 수 없다는 절망에 병실 침대에 누운 채 죽음만 생각

[역경의 열매] 윤희상 <6> 지방공연 가던 중 교통사고로 사지마비 ‘날벼락’ 기사의 사진
2004년 10월 29일 대형 트럭과 추돌 사고 직후의 윤희상 집사 자동차 모습. 이 사고로 윤 집사는 척수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내 인생의 히트곡 ‘카스바의 여인’으로 오랜 시간 무명가수로 보낸 설움을 말끔히 씻어냈다. 가수의 꿈을 이루고 세상의 명예도 얻었지만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었다. 다른 가수들보다 빨리 히트곡을 늘려야겠다는 끝없는 조급증에 더 바쁘게만 보냈다. 트로트계 4인방에 들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다. 돈을 더 벌고 싶다는 욕심도 있어서 서울과 지방을 오가며 많은 행사와 밤무대, 공연장 등에서 노래를 불렀다. ‘카스바의 여인’ 이후 발표한 ‘텍사스 룸바’도 많은 인기를 얻었고 신곡을 홍보하며 바쁜 날을 보내고 있었다.

2004년 10월 29일 오후 5시42분. 내 삶의 모든 것을 바꾸는 사건이 일어났다. 서해안고속도로에서 4.5t 트럭과 추돌사고로 차는 전복됐고 나는 그 자리에서 의식을 잃었다. 매니저 없이 직접 차를 몰고 목포로 가던 길이었다.

몸을 많이 다쳐 전남대병원,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과 강남성모병원까지 세 군데를 거쳐야 했다. 며칠 동안 깨어나지 못했다.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어느 날 중환자실에서 갑자기 참아낼 수 없는 고통에 눈을 뜬 것이다. 이제껏 많은 고생을 했지만 그만한 고통은 이전과 이후에도 없었다.

정신을 되찾고서야 앞니 6개가 빠졌다는 걸 알았다. 전국노래자랑, 목포가요제 등 TV 녹화를 앞두고 있던 나는 하루빨리 치과에서 치료를 받고 방송 출연을 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일어나려는 순간 몸이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사고로 광대뼈 함몰, 각막 파열, 콧대 함몰, 이빨 빠짐, 갈비뼈 골절, 폐 손상을 입은 것이다. 결정적으로 목뼈가 부러져 ‘경추 5∼6번 사지마비 척수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세브란스병원에서는 눈이 썩어 오른쪽 눈을 빼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아내가 도저히 그 수술은 할 수 없다고 완강히 반대해 강남성모병원으로 옮겼다. 3∼4번의 수술 끝에 다행히 0.4의 시력으로 회복됐다.

그러나 노래를 영원히 부를 수 없고 사지마비로 평생 침대에 누워 살아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땐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머리 속엔 오로지 죽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가까운 후배를 통해 제초체를 얻어 자살하려 했지만 누가 그 부탁을 들어주겠는가. 자살마저 내 힘으로 할 수 없었던 나는 할 수 있는 모든 원망과 분노를 쏟아냈다.

병동이 부족해 암병동으로 옮겨졌다. 암 환자들과 같이 생활하던 어느 날, 옛 친구가 목사님을 모시고 문병을 왔다. 친구는 성경책을 선물로 주며 “예수 믿고 구원 받으라”고 했다. 그 소리를 들은 나는 “다시는 병원에 오지 말라”며 완강히 거부했다. 오히려 같은 병동에 있던 암 환자들이 목사님께 기도를 받고 싶다고 요청했다. 그들이 목사님께 기도 받는 모습을 보며 ‘얼마나 살고 싶으면 저럴까’라며 비웃었다.

같은 병실에는 성격이 거친 암 환자가 있었다. 그의 친동생이 목회자였다. 동생은 형의 구원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으나 형은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형이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을 영접했고 호스피스 병동으로 떠나게 됐다.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그가 부럽기만 했다. 죽을 수도 없었던 나는 계속 어떻게 죽을까에 대한 방법만 연구했다.

정리=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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