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유장춘]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 있나이까 기사의 사진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거라사의 광인은 그렇게 소리를 질렀다. 그 상대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래서 그는 ‘미친’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지난 8월 한 달은 유난히도 더웠던 날씨 탓인지 우리 사회에는 그 ‘미친’ 사람들이 많이 나타났다. PC방에 갈 용돈 2000원을 주지 않는다고 뇌병변 장애를 갖고 있는 아버지를 살해한 14세 아들이 있었는가 하면, 식당에 다섯 살과 두 살배기 남매를 버리고 간 후 내 아이들이 아니라고 시치미를 뗀 20대 부모도 있었다. 타고 가던 택시의 기사가 심장마비로 의식을 잃어 추돌한 상황에서 신고조차 하지 않고 사라진 손님들도 있었다. 그들은 운전기사가 엎어져 있는 자동차 운전대 아래에서 차 열쇠를 꺼내 뒷 트렁크를 열고 자신들의 골프가방을 꺼내갔다고 한다. 부모도, 자식도, 옆에서 사람이 죽어 나가도 상관하지 않는 ‘미친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극단적 사례를 일반화시키는 것은 아닐까? 세월호가 가라앉은 지 2년4개월이 지난 지금, 광화문광장에서는 37일째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의 단식농성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농성 이유는 ‘특조위 조사활동을 보장하라’는 것이다. 법적으로 6월말 활동시한이 끝났다는 게 정부·여당 입장이지만 조사할 게 많이 남아 있으니 활동시한을 연장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 특별조사위와 대척점에 있는 곳이 정부 부처라는 사실이 놀랍다. 세월호 사건의 규모나 사회적 함의가 중요한 것도 사실이지만 희생자나 유가족의 고통을 생각할 때 적극적으로 도와도 시원치 않을 판에 방해를 하고 있다니 이해할 수 없다.

25년 동안 일본대사관 앞에서는 수요일마다 정신대 할머니들의 시위집회가 계속되고 있다. 위안부 할머니 12명은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한·일 양국 정부 간 합의에 따라 일본정부로부터 10억엔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피해 할머니들의 동의나 허락 없이 어떻게 ‘이(위안부)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임을 확인한다’고 발표했는지 요즘도 납득이 안 된다. 강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해진 수순에 따라 ‘화해·치유재단’이라는 곳을 통해 돈을 나누어주는 절차를 시작하고 있다. 과연 이렇게 해서 화해·치유가 이뤄질까. 이 사안에 대하여는 피해 할머니들의 심정을 헤아려 그들이 중심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토록 중요한 일들이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그토록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는데도 한걸음도 앞으로 진전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복잡해지고 혼미해지는 상태로 치닫는 경우가 적지 않다. 우리는 그것을 번연히 보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고 있다. 마치 나와 그들이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거라사의 광인을 닮았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가인은 아벨이 어디 있느냐고 묻는 하나님께 그렇게 대답했다. 사탄은 관계를 파괴시킨다.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를 단절시킨다. 그것은 인격적 단절이며 동시에 사회적 단절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소외, 단절, 고립, 차별, 방관, 격리, 방치, 독점, 주변화, 무관심, 경쟁, 분쟁, 폭력 등의 문제들은 모두 악마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싸워야 할 영적 전쟁은 이러한 분리된 관계를 회복하는 일이다. 예수께서는 기도할 때 ‘우리’라는 일인칭 복수를 사용하도록 가르치셨다. 그러므로 내가 드려야 할 기도는 ‘우리를 위한 기도’가 되어야 한다. 그 ‘우리’는 한 가족의 차원에서 지역사회 차원으로 커져야 하고 더 나아가 민족과 세계를 함께 아우르는 ‘우리’로 넓어져야 한다. 주여.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유장춘 상담심리사회복지학 한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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