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전정희] ‘아C 정전’ 한국교회 기사의 사진
한국교회는 ‘정신승리법’으로 고난을 이겨내는 ‘아Q’일까.

중국 근대작가 루쉰은 신해혁명 전후 무기력한 중국인을 희화화한 작품 ‘아Q 정전’의 주인공 아큐를 통해 정신승리법으로 집약되는 중국인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드러냈다. 청조 말기 탐욕의 봉건사회를 살아가던 날품팔이 아큐가 지방 권세가와 그 권세에 빌붙으려는 약삭빠른 대중에게 이리저리 치이는 모습을 희극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아큐는 하층민 쿠리이면서도 쓸데없는 자존심만은 하늘을 찔렀다. 지주 첸 가의 아들이 변발한 것을 두고 그저 재미로 양놈이라고 욕하다 늘씬하게 두들겨 맞는 칠푼이가 아큐였다. 누가 자신을 대머리라고 놀려도, 또 젊은 과부에게 수작 걸다 쥐어 맞아도, 놀음을 하다 큰돈을 잃어도 매사 자신이 정신력으로 이겼다며 자위했다. 이른바 그의 황당무계한 정신승리법이다.

어느 순간 한국교회가 아큐 신세가 됐다. 아니 정확히 자초했다. 성직자의 타락, 직분자의 탐욕이 하루가 멀다 하고 폭로된다. 그리고 그 비난이 ‘댓글 돌팔매’가 되어 날아든다. 대부분의 평범한 크리스천들은 심한 부끄러움을 느낀다. 한데 문제는 도매금으로 돌팔매질을 당하는 크리스천들이 점점 아큐와 같은 정신세계를 가진 ‘아C(Christian)’가 되어 간다는 것이다. 네티즌 등으로부터 모욕이 심해지다 보니 자신들이 마녀사냥을 당하는 것이라 믿고 현실을 회피한다는 것이다. 현실은 부끄럽고 개선은 번거롭다보니 ‘그럼에도’ 자기가 이겼다고 생각하는 정신승리법, 즉 자기 만족으로 나타난 것 같다.

한국교회가 직면한 사회적 비난의 제일 원인을 꼽으라면 타락한 성직자다. 설문조사 같은 통계에서도 그렇게 나온다. 그런데 그들은 사고를 치고도 늘 그 자리에 굳건하다. 교언을 앞세워 하나님 뒤로 숨어 버리기 때문이다. 교인 아C가 깨어 있으면 이런 타락한 성직자들이 발붙일 곳이 없다. 그런데도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활개 칠 수 있는 것은 타락한 영웅들이 아C에게 심어 놓은 정신승리법에 맹목적인 탓이다.

1930년대도 오늘날과 유사했다. 1919년 3·1운동이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개신교인은 30만명을 넘어섰다. 일제의 문화정치에 순응한 성직자들이 식민 당국과 밀월 관계를 형성, 외형을 키우면서 성직 계급이 형성됐고 제도화됐다. 신앙의 양태 또한 달라졌다. 강점기 초 출애굽 사건과 바벨론 포로 역사를 강조하던 설교, 즉 어떤 사상이나 이념보다 예수의 인류애적 사랑이 중요하다는 민족교회의 정체성을 갖춘 설교는 순응한 성직자들에 의해 관념적 설교로 빠르게 대체됐다. 교회는 일본 제국주의 현존 질서와 타협했고, 그 질서를 신성화하는 데 앞장섰다. 약자가 고통을 호소하면 “당신들이 힘이 없고 게으른 탓”이라고 윽박질렀다. 1910년대까지 교회는 “천국의 백성은 사회적 인물이 되어야 하고 인류에게 유익을 주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훗날 친일파로 변절한 작가 이광수조차도 1917년 ‘청춘’이란 잡지에 기독교가 조선 사회에 끼친 영향을 이렇게 정리했다. 서양 사정의 전파, 도덕의 진흥, 교육의 보급, 여성의 지위 향상, 조혼의 폐단 교정, 한글의 보급, 사상의 자극, 개성의 자각 또는 개인의식의 자각.

한데 타락한 성직자들이 나타나면서 천국 백성이 되지 못하는 요인을 개인의 심리와 영성 차원으로 몰았다. 죄성만을 심었다. 그리스도인의 기본적 자세가 몰아적 복종과 순종이라고 강요했다. 오늘의 크리스천은 문해학교를 다니던 100여년 전 아큐가 아니다. 그런데도 정신승리법과 같은 낡은 관습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왜 일까. 예수를 각자의 내면에 국한된 종교로 가두는 저마다의 종교적 자폐 증세 때문은 아닐까. 루쉰이 당대를 두고 푸념하듯 말했다. “중국인은 누군가가 나서서 말해주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이 정도는 아니지 않은가.

전정희 종교국 부국장 jhjeon@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