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윤희상 <8> 찬송가 깊은 뜻 깨달으면서 ‘눈물’로 찬양 불러

“주님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노래뿐” 찬양사역·복음성가 제작에 나서

[역경의 열매] 윤희상 <8> 찬송가 깊은 뜻 깨달으면서 ‘눈물’로 찬양 불러 기사의 사진
윤희상 집사는 주님을 만난 뒤 찬양사역자로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증거하고 있다. 사진은 한 기독 방송에서 찬양을 부르고 있는 윤 집사 모습.
아내와 서울 광명그리스도의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특히 찬송가 가사가 내 마음을 깊이 울렸다. 노래를 했던 사람이라 가사 이해력이 좋았던 것이다. 쏟아지는 눈물 때문에 찬송을 중단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통곡에 가까운 내 찬송에 다른 성도들도 흐느꼈다.

목사님의 설교도 들리기 시작했다. 말씀을 조금씩 이해하면서 지난날을 돌아봤다. 이 넓은 세상에 수많은 사람이 살아감에도 불구하고 내 주위에는 연로하신 부모님, 자기들 먹고 살기 바쁜 형제·자매들, 착하기만 한 아내밖에 없었다. 아무리 둘러봐도 내 한몸 의지할 곳 없는 처절한 현실 앞에서 오로지 의지할 데라곤 주님밖에 없음을 깨닫기 시작했다.

뒤늦게 신앙생활을 하면서 찬양사역자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내가 주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오로지 노래뿐이다.’ 그런 생각에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한 앨범을 만들기로 했다. 갖고 있던 돈은 500만원뿐이었다.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앨범 작업에 들어갔다. 가수지망생 때 같이 노래했던 친구 허만생 목사님과 의논하면서 복음성가 앨범을 만들기로 했다.

당시 주일 오전 예배는 내가 섬기는 광명그리스도의교회에서 드리고 오후 예배는 친구 허 목사님이 경기도 남양주에서 개척한 성민교회에서 드렸다. 왕복 100㎞가 넘는 거리였다. 엉덩이에 생긴 욕창이 계속 악화됨에도 주님을 사모하는 열정에 예배 드리러 가는 그 길이 힘들지 않았다. 사실 힘들다고 속내를 털어놓고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친구 한 명 없는 현실에서 육체·정신적 고통으로 인생을 다 내려놓고 싶을 때가 얼마나 많았던가. 그럴 때마다 기도하게 하시고 힘을 주시며 ‘너는 내가 특별하게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희망을 주신 하나님께 정말 감사했다.

복음성가 앨범을 제작하는 동안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그때만큼 그렇게 기도했던 적도 없었다. 돈을 많이 벌게 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많은 영혼을 살리는 은혜의 찬양을 부르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런데 하나님께선 은행 빚을 지면서까지 찬양앨범 만드는 것을 원치 않으셨던 것 같다. 하나님은 내게 지혜를 주셨다. 동료 가수들의 협조를 받아 2010년 ‘디스코 연가 1∼2집’을 먼저 발표하도록 이끌어주셨다.

그러나 앨범을 내놓고 여러 도매상에 연락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열악한 한 도매상만이 앨범 거래를 수락했다. 앨범을 푼 지 이틀 지났을 때 2000만원 상당의 재주문이 들어왔다. 간절한 기도 속에 떠오른 지혜로 발표한 이 앨범은 히트를 쳤고 이때 얻은 수익으로 나는 빚 없이 복음성가 앨범을 만들 수 있었다. 궁핍한 생활도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어느 날 도매상에 결제를 받으러 갔는데 거기서 한 50대 아주머니가 나를 반갑게 알아보셨다. 갑자기 어떤 사람에게 전화를 걸더니 나에게 핸드폰을 바꿔주는 것이 아닌가. 아주머니는 여의도순복음교회 구역장으로 자신의 구역담당 목사님에게 전화했던 것이다. 3일 뒤 목사님으로부터 다시 연락이 왔는데 나를 예배 시간에 간증자로 세우고 싶다는 것이었다. 주님을 만난 지 얼마 안 된 나는 당시 ‘간증’이 무슨 뜻인지도 몰랐다. 이 상황이 얼떨떨하기만 했지만 하나님은 나를 더 새로운 차원으로 이끌고 계셨다.

정리=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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