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이슈] 상처난 땅, 다시 힐링을 준비하다

‘구마모토 대지진’ 5개월 日 규슈섬 가보니

[월드 이슈]  상처난 땅, 다시 힐링을 준비하다 기사의 사진
지난 2일 일본 규슈의 ‘특별사적’ 구마모토성을 찾은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지난해 관광객 177만명이 찾은 구마모토성은 지난 4월 두 차례 지진으로 기와와 복원했던 돌담 등이 심하게 훼손돼 현재 내부 출입이 금지됐다. 이듬해부터 향후 수십년에 걸쳐 장기 복원에 돌입, 그 과정을 관광객들에게 공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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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크, 뜨겁다.” 온천수에 나란히 발을 담근 연인의 얼굴에선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백발이 성성한 노부부를 비롯해 어린아이와 부모도 함께 앉아 주말을 즐겼다. 홀로 천천히 책장을 넘기는 여성도, 배낭을 멘 채 눈을 감은 젊은 남성도 발끝을 걷어올린 채 나란히 앉았다. 3일 일본 규슈(九州) 오이타(大分)현 벳푸(別府) 길거리의 공공 족욕온천은 이렇듯 인파로 북적였다. 오가는 대화 사이에서 때때로 들리는 우리말에 고개가 절로 돌아갔다.



지진의 기억

이치하라 히데시(61), 요시에(58·여)씨 부부는 2차 지진이 일어났던 지난 4월 16일 새벽 침실에서 함께 자고 있었다. 집이 세차게 흔들리자 부부는 서로를 끌어안고 몸둘 바를 몰랐다. 2대째 같은 곳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하숙업을 해오면서도 경험 못한 큰 지진이었다. 아침이 되어 밖에 나가보니 마을은 쑥대밭이 돼 있었다. 이날부터 부부의 이재민 생활이 시작됐다. 부부는 인근 온천 휴양시설인 ‘아소 팜랜드’에서 다른 이재민 200여명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열도의 최남단 규슈섬은 불과 5개월 전인 4월 두 차례에 걸쳐 지진을 겪었다. 구마모토(熊本)현에서 먼저 시작돼 ‘구마모토 지진’으로 이름 붙여진 이 재앙으로 50여명이 죽고 가옥 약 16만채가 훼손됐다. 일본을 대표하는 관광명소 중 하나인 구마모토성이 크게 부서졌다. 기원전 만들어졌다는 아소산 신사 건물도 일부가 무너졌다. 아소산으로 향하는 57번 국도는 열흘간 출입이 통제됐다.

마침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던 아베 신조 정권은 재빨리 대응했다. 한신 대지진과 도호쿠 대지진 쓰나미 사태 등 최근 자연재해 경험으로 민감해진 표심을 의식한 대처였다. 덕분에 물적 피해가 복구되는 데는 규모에 비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자위대가 즉각 투입됐고 각 지역의 민간 소방단도 활약했다. 한국에도 알려진 이 지역 인기 캐릭터 ‘쿠마몽’은 5월 어린이날부터 각 피난처를 방문해 이재민을 위로했다.

가바시마 이쿠오(69) 구마모토현 지사는 한국 기자단과의 인터뷰에서 “식량, 식수, 피난처 조달 등을 정부가 요청하지 않아도 계속 ‘푸시형 지원(선제적 지원)’을 했다”면서 “아베 총리가 필요한 대로 거침없이 진행하라고 지시해 비용을 생각지 않고 잘 대응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가장 큰 피해를 입었던 구마모토현 마시키마치 마을의 니시무라 히로노리 이장도 “그간 조성돼 있던 민간 소방단이 피해 구조의 큰 힘이었다”고 전했다. 일본 정부에 따르면 7월 규슈 체감경기는 지진 발생 전인 3월과 같은 수준으로 회복됐다.

다시 살아나는 온천관광 명소

물적 피해보다 외려 심각했던 건 이후 관광산업 전반에 닥친 후폭풍이었다. 지진에 대한 두려움 탓에 일본 국내 관광객은 물론 해외 관광객이 뚝 끊겼다. 지진 한 달 뒤였던 5월 8일 기준으로 규슈 전체에서 숙박 예약이 70만건 넘게 취소됐다.

규슈 입국자의 약 50%를 차지했던 한국 관광객이 특히 급감했다. 5월 말 시점으로 전년 대비 80%가 줄었다. 현지 관광업계에서는 지진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 정서상 관광객들의 두려움이 더욱 큰 것으로 보고 있다.

2020년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관광산업을 육성하려는 아베 정부가 다시 팔을 걷어붙였다. 관광진흥 준비금으로 마련해둔 거액의 예산 중 일부를 투입해 7월부터 9월까지 ‘규슈 부흥할인’을 실시했다. 관광객들에게 이 지역 숙박 요금을 70%까지 할인해주는 제도였다. 덕분에 구마모토와 오이타현 등 주요 관광지의 관광객 수는 지진 이전 수준을 거의 회복했다.



한국인 관광객을 모십니다

‘힐링 온천’으로 유명한 아소산 온천과 아소 신사, 구마모토성 등 이 지역의 대표적 관광지 중 몇몇 곳은 아직 상처가 완전히 회복되지 못했다. 아소산의 건강 테마파크인 아소 팜랜드 관계자는 “겉으로 드러난 시설은 거의 돌아왔지만 아직까지 전체 복구도는 절반 정도로 본다”고 전했다.

지난 1일 오전에도 구마모토현에는 진도 4 정도의 지진이 한 차례 일어났다. 피해는 경미했지만 관광객들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사건이다. 지금의 관광수요 회복이 할인책에 기댄 효과일 뿐이라는 불안감 역시 관광업에 종사하는 현지 주민들의 마음을 불안케 한다.

규슈 각 지자체에서는 실제 피해 규모에 비해 커진 관광객들의 불안심리를 가라앉히기 위해 적극 노력 중이다. 특히 온천 관광지로 유명한 구마모토와 오이타현에서는 가을과 겨울 특수를 노리고 있다. 일본 정부도 10월부터 12월까지를 부흥할인 2기로 삼고 50% 할인을 이어나갈 예정이다.

특히 외부 관광객 중 다수를 차지했던 한국인 관광객들을 회복하는 게 시급한 과제다. 관광업 부흥을 공약으로 내걸고 2년 전 당선된 나가노 야스히로(41) 벳푸 시장은 “한국인 관광객은 평소 이 지역 외국인 관광객 중 55%를 차지하지만 지금은 체감상 이전의 절반 수준”이라면서 “이 고장은 손님이 와야 빛나는 곳이다. 한국과의 관광 교류가 조속히 회복되길 바란다”고 바람을 전했다.

한국식 김치공장 사장 요시하라
“공장·집 폭삭… 포기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공장 바닥 곳곳은 쩍쩍 갈라져 있었다. 스무 걸음 남짓한 마당에 테이블과 간이의자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누추합니다만 닦긴 했으니 앉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등이 굽은 반백의 중년이 미안해 어쩔줄 몰라 하는 말투로 한국에서 온 손님들을 맞았다. 머리에는 김치공장에서 으레 착용하는 위생모를 쓴 채였다. 한국식 김치를 만들어 팔아온 요시하라식품의 사장 요시하라 노리유키(54)씨다.

요시하라식품의 한국식 김치는 주변에 명성이 자자하다. 요시하라식품이 농산품 가공공장이었던 일곱 살 무렵, 야채를 양념해 팔았다가 맛있다고 칭찬을 들은 게 시작이었다. 지금도 질 좋기로 소문난 나가노산 배추를 공수해 한국식 김치를 만들어 근방에 판다. 관광객 등 외부인들의 수요가 많다고 했다.

4월 첫 번째 지진이 일어났을 때 요시하라씨는 공장에 있었다. 갑작스레 앞에 있던 TV가 흔들리자 자기도 모르게 테이블 아래로 기어들어갔다. 정신을 차리자 아래로 식기류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지진이 잦아든 뒤 요시하라씨는 가족과 주차장에서 잠을 청했다.

이틀 뒤 2차 지진이 나자 모든 것은 더욱 엉망이 됐다. 공장은 망가지고 집은 반쯤 무너졌다. 당연히 주문은 끊겼다. 당장 복구도 할 수 없었다. 공장 직원 스무 명을 전원 해고했다. 얼굴을 마주하고 사는 이웃 주민들이었다.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아르바이트직으로 돌아온 직원들은 인터뷰를 하는 요시하라씨 뒤편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원래 인원의 절반이다. 그때 결정이 과연 옳았던 건지 지금도 생각한다고 요시하라씨는 힘이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두 달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게 흘렀다. 현에서 마련해준 가설주택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지금 일하는 직원들 중 둘도 그곳에 산다. 일상은 힘들어졌다. 지진의 충격으로 기억력이 떨어져 도구가 어디 있는지 잊는 것도 다반사였다. 반쯤 무너진 집과 소매점 겸 사무실 용도로 쓰던 2층 건물을 헐어냈다. 포기하고픈 생각도 들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다른 것 말고 일만 열심히 하자고 마음먹었다.

공장은 아직도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바닥에는 균열이 갔고 배수구가 일그러졌다. 재료를 옮기는 크레인이 비스듬히 휘었다. 5월 매출은 지난해의 반이었다. 지금도 평년의 50∼60%를 오간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할 때마다 자리에서 일어서는 통에 굽은 크레인을 닮은 그의 등이 연신 들썩였다.

요시하라씨는 한 달 전에야 이발소를 갔다. 지진이 난 뒤 처음이었다. 이발사는 전부터 친하게 지내온 지인이다. 살아남은 게 대단한 행운이라고 얘기하며 위로를 나눴다고 했다. 정부에서는 그룹지원금이라는 이름으로 피해복구액의 최대 3분의 2까지 업체들에 지원하고 있다. 지원을 받으면 다른 안전한 곳으로 공장을 옮길 생각이다.

자녀들은 요시하라씨에게 또다른 희망이다. 농협 직원인 큰아들은 일을 물려받고 싶어하지만 요시하라씨는 아직 20살이라 좀더 수련을 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둘째인 딸은 대학교 1학년, 막내아들은 고등학교 1학년이다. 아직 공부가 필요한 아이들이라고 요시하라씨는 말했다.

구마모토=글·사진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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