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박형준] 제3지대론 어떻게 볼 것인가 기사의 사진
제3지대론과 빅텐트론이 정치권의 담론으로 떠올랐다. 기대와 냉소가 교차하고 있다. 제3지대론은 정치공학으로 보느냐, 체제 개혁의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정치공학적 맥락에선 내년 대선을 3자 구도로 보고 양당체제에 신물이 난 사람들이 제3지대에 결집해 집권하자는 시나리오로 제시된다. 이 시나리오는 당장 “새로운 인물이 있느냐” “잡탕과 야합 아니냐”는 비판에 시달리게 된다. 나올 수 있는 비판이고 틀린 얘기라 할 수도 없다.

하지만 정치 패러다임 변화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 의미는 단순하지 않다. 먼저 지난 대선에서 표출된 ‘안철수 현상’을 떠올릴 수 있다. 이는 지난 총선에서도 이어졌다. 그 현상은 안철수 의원이나 국민의당에 대한 적극적 지지가 이루어낸 것이 아니다. 한국정치 이대로는 안 된다는 국민들의 염원이 투영된 현상이다. ‘적대적 공생관계’로 기득권을 유지해온 양당 체제에 대한 대안을 찾는 바람이었다. 그 수혜자가 ‘국민의당’이었을 뿐이다.

지난 총선에서 새누리당도 완패했지만 자신의 뿌리인 호남에서 외면당한 더불어민주당도 이긴 선거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총선 이후 양당이 제대로 반성하고 혁신했다는 징후는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친박’ ‘친문’의 기득권은 공고화되고 폐쇄성은 깊어졌다. 따라서 ‘안철수 현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일 수밖에 없다.

더 근원적으로 제3지대론은 ‘87년 체제’를 넘어서라는 시대의 요구를 담는다. 87년 체제는 민주화라는 위대한 성과를 낳았다. 하지만 여전히 대통령과 국가의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고도성장을 성취해 정당성을 부여받았던 발전국가 체제였다.

하지만 세기의 전환과 함께 이미 시대가 바뀌었다. 고도성장 시대는 끝났다. 선택과 집중의 추격형 경제에서 혁신과 파동의 선도형 경제로 질적 전환이 요구되고 있다. 국가와 대통령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던 시대도 끝났다. 사회는 급격히 다원화·복합화되고 있다. 국민들의 권리 의식은 매우 높다. 양극화를 극복하고 삶의 질을 높이라는 요구는 폭증하고 있다. 정치적 참여의 장은 디지털 시대와 함께 활짝 열렸다. 이런 시대의 변화를 87년 정치체제는 담지 못하고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 비효율적 5년 단임제, 지역과 이념 대립에 의한 싸움과 배제의 정치, 계파 독점의 수직적 정당 운영 등 87년 체제의 정치질서는 이미 한계를 드러냈다.

철이 지나면 옷을 바꿔 입어야 한다. 철 지난 옷을 고집하면 모양도 빠지지만 건강에 좋을 리 없다. 정치가 아무리 실망을 주더라도 시대의 문을 따주는 역할은 정치의 고유한 몫이다. 지금은 낡은 틀을 약간 손봐서 써야 하는 시기가 아니다. 63년 체제를 87년 체제로 바꿨듯 87년 체제를 ‘2018년 체제’든 ‘2020년 체제’든 체제 전환을 이루어내야 할 시기다. 코트를 반팔로 만든다 해서 여름옷이 되는 게 아니다. 새 정치질서에 대한 요구를 역사적 소명으로 받들고 구현하는 것, 만일 이를 위한 주체를 만드는 것이 제3지대론이라면 그 의미는 사뭇 달라진다.

제3지대론은 특정인 대통령 만들기 수단이 되면 실패한다. 타인을 수단으로 보는 접근법은 상이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하나로 묶을 수 없다. 결국 기존 정치처럼 밥그릇싸움으로 비치기 십상이고 국민들은 등을 돌릴 것이다.

대신 정치공학적인 ‘나’가 아니라 역사적 소명을 붙든 ‘우리’를 앞세우면 희망을 볼 수 있다. ‘나 아니면 안 된다’가 아니라 ‘내가 안 되더라도 시대를 교체하는 데 역할을 하겠다’는 역할론으로 뭉치면 가능성을 확장할 수 있다. 이 시대의 정신은 배제와 폐쇄가 아니라 포용과 개방이다. 차이를 넘어 하나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동종교배가 낡은 패러다임이고 이종교배가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이종교배를 하려면 소통과 공감, 관용과 배려의 미덕이 발휘되어야 한다. 그래야 사회적 합의와 정치적 타협을 생명으로 하는 협치를 주도할 수 있다.

빅텐트의 가장 중요한 관건은 무엇인가. 87년 체제를 넘어서는 공동의 비전과 개혁과제에 대한 합의를 이루어내는 것이다. 이익이 아니라 콘텐츠로 연대해야 하는 것이다. 또 정당 패러다임도 바꿔 중앙당 중심의 하향식 정치와 결별하고 디지털 정당과 상향식 직접민주주의를 선보여야 한다. 지역주의를 넘어선 영호남 통합세력도 되어야 한다. 제3지대 빅텐트가 이를 보여준다면 그것은 이미 제3지대가 아니라 새로운 메인스트림을 만드는 일이다. 중한 것은 정치공학이 아니라 역사적 소명이고 비전이다.

박형준 동아대 교수 (전 국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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