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 김숙 前 유엔대사 “김정은은 맹구… 자신감 결여로 공포정치에 매달려” 기사의 사진
김숙 전 유엔대사가 엘리트층이 동요하고 있는 북한의 최근 정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 전 대사는 “지속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북한이 대를 이어가며 70년간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어느 체제보다 통제 및 탄압 시스템이 잘돼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서영희 기자
현직에서 물러난 지 꽤 됐는데도 오랜 외교관료 생활과 국가정보원 1차장을 지낸 경륜에서 뿜어져 나오는 예리한 통찰력은 하나도 녹슬지 않았다. 김정은을 맹구(猛狗·사나운 개)에 비유하는 등 화법에도 거침이 없었다. 김숙(64) 전 유엔대사는 한비자의 고사 구맹주산(狗猛酒酸)을 인용해 김정은을 비판했다. 사나운 개 때문에 술을 사러 오는 사람이 없어 술이 상한다는 뜻으로 포악한 정치로는 주민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는 의미다.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안보 현안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 지난 1일 서울 광화문 개인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김정은이 공포정치에 매달리는 이유는.

“통치에 자신감을 갖지 못했다는 증거다. 포악한 개인의 성격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 가뜩이나 실패한 집단인데 32세에 불과한 젊은 지도자가 공포로 이끌면 정권의 지속 가능성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정권을 실패하게 하는 요소가 10가지 이상 있다 하더라도 정권을 지탱하는 요소가 그보다 강하면 정권은 유지된다. 아직은 정권 지탱 요소가 정권 실패 요소를 상회하고 있다. 지난 70년간 축적된 북한의 감시통제체제는 역사상 그 어떤 통제체제보다 압살적이다. 그 결과 북한 주민들은 체제에 반발할 생각을 하지 못한다. 중국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 중국은 안보 이익을 위해 북한 핵무기에 반대하지만 그보다 한반도 안정을 정책의 우선순위에 두고 있다.”

-태영호 주영 공사를 비롯해 북한 외교관들의 망명·탈북이 잇따르고 있다.

“북한 엘리트층이 동요하고 있는 건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이것이 북한의 붕괴나 급변사태를 예고하는 건 아니다. 체제 특성상 북한은 망할 때까지는 망하지 않는다. 황장엽 노동당 비서의 탈북은 태 공사 망명보다 우리에게 준 충격이 훨씬 컸다. 그럼에도 북한 체제는 계속 유지됐다. 나라가 오늘 1% 망하고, 내일 2% 망하는 게 아니다. 급변사태는 갑작스럽게 나타나는 것이어서 예측이 불가능하다. 대비는 항상 해야 하나 당장 내달에, 내년에 무슨 일이 있을 것처럼 대응하기 시작하면 자칫 우리의 판단력이 흐려질 수 있다. 냉정하고 전략적인 시각이 요구된다.”

-점증하는 북한 핵·미사일 위협의 대응수단으로 핵무장론과 함께 원자력 잠수함을 보유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군사력은 총체적으로 판단해야지 어느 하나만 갖고 호들갑 떠는 태도처럼 바람직하지 않은 게 없다. 북한이 끝내 핵을 포기하지 않고 실전배치할 경우 거기에 대응해 전략을 수정하면 된다. 우리가 핵무장을 하면 북한과 달리 잃을 게 너무 많다. 전쟁이 발발하면 승리는 궁극적으로 우리 몫인데 커다란 부담과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핵무장할 이유가 없다. 핵잠수함 건조는 신중하게 검토하되 모든 걸 여기에 걸 필요는 없다. ‘우리라도 남북비핵화 공동선언을 지켜야 한다’는 일부 주장은 너무 순진하다. 우리 스스로 남북비핵화 공동선언을 파기할 수 있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비핵화공동선언은 특수한 남북관계에서 맺은 선언이지 조약이 아니다. 국회 비준동의를 받지도 않아 법적 구속력이 없다. 다만 정치·안보적으로 구속력을 갖고 있을 뿐인데 이제 사실상 사문화됐기 때문에 이것이 핵잠수함을 보유하는 데 걸림돌은 되지 않는다.”

-사드 배치는 불가피했나.

“사드는 여러 가지의 미사일 대응무기 중 하나다. 북한 미사일을 100% 방어할 수 있는 무기는 없다. 따라서 우리의 방어력을 조금이라도 높일 수 있다면 안보적 차원에서 배치하는 게 옳다. 다만 정부가 후속조치를 취하는 과정에서 몇 가지 오류가 있었다. 첫째, 너무 긴 시간 좌고우면했다. 북한이 4차 핵실험을 경고한 작년에 배치 결정을 해야 했는데 늦었다. 둘째, 후보지를 결정할 때 국내 정치도 고려했어야 했다. 누차 경험한 바와 같이 핵폐기물 저장소, 원전 등 민감한 시설을 건설할 때 지역사회를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사드배치 결정과 후보지 결정 사이 간격이 닷새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서 성주군민이 반발하는 거다.”

-사드 배치로 껄끄러워진 한·중 관계를 풀 묘수는.

“단박에 풀 수는 없다. 현대 외교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안보와 경제가 맞물려 돌아간다. ‘안보 따로, 경제 따로’란 있을 수 없다. 지난 25년간 양국 관계가 엄청 발전했지만 안보면의 발전은 평균치를 밑돈다. 양국이 기본가치를 공유하고 있지 못해서다. 한국은 미국과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인권, 법치주의 등의 가치를 공유하고 있고 한·미동맹 체제를 구축하고 있는데 중국과는 그렇지 못하다. 때문에 안보·정치적 협력은 더딜 수밖에 없다. 이런 현실을 인정하고 긴 호흡으로 풀어가야 한다. 결국 외교로 해결해야 하나 안보나 핵문제 등은 우리가 양보할 수 없는 핵심이익이다. 이런 부분은 지켜나가면서 중국을 설득해야 한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보나.

“제재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국제사회가 원하는 방향으로 제재대상국의 정책을 변경시키는 수단이다. 효과가 당장 나타나지는 않는다. 끝내 굴복하지 않는 국가도 있다. 제재가 목적이 아닌 이상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로드맵을 만들어 다른 차원에서 핵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병행돼야 하는데 지금 그런 노력이 전혀 시야에 들어오지 않고 있다. 지난 3월 초 유엔 안보리 차원의 제재조치가 취해졌을 때 3∼6개월이 지나면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는 희망적인 관측이 있었는데 6개월이 지나도록 북한 내부의 동요 조짐은 별로 안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제재가 실패했다고 보는 것은 전략적 균형을 잃은 지나치게 가혹한 평가다. 북한이 너무 폐쇄적이어서 비명소리가 창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는 측면도 있다. 천안함 피격 당시 획득한 정보에 의하면 동남아나 중동에 나와 있는 북한 외화벌이꾼 사이에 ‘우리 조선이 왜 이러느냐. 이러다 망하는 것 아니냐. 큰일 났다’ ‘내가 갖고 있는 자금을 들고 도망쳐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들이 돌았었다. 제재가 유일한 정책이어서는 안 되지만 제재의 중요성도 무시해선 안 된다.”

-개성공단 폐쇄로 중국만 득을 봤다는 시각도 있는데.

“나라의 핵심적 뼈대는 안보다. 물론 경제와 통상도 중요하나 핵심뼈대에 속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북한을 설득하기가 난망한 상황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차단하는 수단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그중 하나가 개성공단 폐쇄다. 개성공단 폐쇄로 그 이익이 중국에 넘어갔다는 전제에 동의하지 않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 우리가 감수해야 할 부분이다.”

-꽉 막힌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어디에서 찾아야 하나.

“인도주의적 부분에서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많은 어려움이 따르더라도 인도적 대북지원은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인도주의적 문제와 정치적 사안을 분리해야 한다고 하지만 두 사안의 완벽한 분리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래도 먼 장래를 내다보면서 대화의 문을 열어놔야 한다. 정부가 ‘진정성이 결여됐다’는 이유로 군사분계선에서의 우발적 충돌방지를 위한 북한의 군사회담 제의를 거부한 건 아쉽다. 북한과의 대화를 주저할 이유가 없다. 우리 스스로 왜 대화에 제한을 가하는지 동의하기 어렵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북정책도 바뀌는데 독일의 동방정책처럼 보수와 진보를 함께 품을 수 있는 우리의 지속가능한 대북정책 수립은 불가능한가.

“아니다. 대통령의 철학이 가장 중요하다. 비록 이명박정부, 박근혜정부가 햇볕정책을 승계하지 않았지만 두 정부 정책에 햇볕적인 요소가 일부 스며들어가 있다. 북한과의 신뢰구축을 통해 남북 간에 긴장을 완화하고 통일로 나아가는 길을 열고자 하는 원칙과 방향은 역대 어느 정부를 막론하고 면면이 이어져오고 있다. 이를 어떻게 정책화하고 우선순위를 매기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일 뿐이다. 그렇더라도 정치적, 이념적 이유로 단절된 부분이 더 크게 보이는 게 사실이다. 외연을 확장하는 쪽으로 대북정책이 마련돼야 한다.”

-보수·진보 간에 남북문제만큼 시각차가 큰 분야가 없는 것 같다.

“북한이란 상대가 있어서 그렇다. 그리고 그 상대가 너무 비이성적이고 완고하다. 역대 정부 정책 자체는 다 나름의 합리성을 갖고 있었는데 어떤 정책이든 북한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보수 쪽에서 김대중·노무현정부의 햇볕정책을, 진보 쪽에선 이명박·박근혜정부의 대북정책이 실패했다고 보는 건 합리적이지 않다.”

-북한인권법 시행으로 북한 주민 인권이 개선될까. 오히려 남북관계를 악화시킬 것이라는 비판적 시각도 있는데.

“대북 압박요인이 하나 더 늘었다. 인권은 인류 보편적 가치다. 남북관계를 생각해서 인권문제를 뒤로 놨던 지난 몇 대 정권의 생각은 이제 없앨 때가 됐다. 북한 인권문제는 남북관계에 어려운 요소가 하나 증가하는 한이 있더라도 추구해야 할 매우 중요한 가치다. 북한인권법은 정권이나 체제에 대해 반발할 엄두도 못 내는 북한 주민들의 시민의식을 깨우치게 하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김숙은…

정통 외교관료 출신으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최측근으로 꼽힌다. 반 총장이 오는 12월 31일 임기를 마치고 내년 대선에 뛰어들 경우 핵심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1978년 외무고시 12회에 합격한 뒤 주미대사관 1등서기관, 외교통상부 북미국장·한반도평화교섭본부 본부장, 주유엔대사, 국가정보원 1차장, 유엔 여성기구 집행이사회 의장 등을 역임했다. 6자회담 우리 측 수석대표로도 활약한 김 전 대사는 2013년 10월 유엔대사를 끝으로 공직에서 물러났다. 당시 세종재단 이사장직을 제의받았으나 '관피아' 논란에 휘말리기 싫다며 고사했다고 한다.

글=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 사진=서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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