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한민수] 정치인과 사진 찍기 기사의 사진
우리나라에서 정치인만큼 사진 촬영을 즐겨하는 부류도 없다. 특히 선거 때면 남녀노소는 물론 신분과 낯도 가리지 않고 같이 사진을 찍는다. 표(票)가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유권자 입장에서도 유명 정치인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찍은 사진을 집이나 사무실에 걸어놓으면 ‘폼’이 나는 게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종종 예기치 않은 ‘사고’가 터지기도 한다. 정치 생명에 타격을 줄 만한 일에 사진이 등장하는 경우다. 1997년 11월 말 대선을 코앞에 두고 나온 ‘오익제 편지 사건’이 대표적이다. 그해 8월 월북한 오익제 전 국민회의 고문이 ‘북한 정권도 김대중(DJ) 후보의 당선을 기대한다’는 취지의 서신과 함께 예전에 김 후보와 찍은 사진을 보내온 것이다. 안기부는 수사에 착수했고 발칵 뒤집힌 야당은 사진의 의미를 축소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2010년 8월 김태호 총리 후보자는 비리 혐의로 수감된 한 기업인과의 친분을 부인하다가 사이좋게 찍은 사진이 공개되면서 거짓말 논란에 휩싸였다. 그의 낙마에는 사진이 큰 영향을 미쳤다.

이 같은 ‘정치인과 사진 찍기’가 미국에서는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미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이 지난 2주 동안 갑부들과 22번을 만나 5000만 달러(546억원)의 선거자금을 모았는데, 한 가족이 클린턴 후보와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지불한 비용이 1만 달러(1092만원)에 달했다고 보도했다. 사진 한 장을 찍으려고 경차 한 대 값을 낸 셈이다.

아직 한국에서는 정치인과 돈을 내고 사진을 찍었다는 얘긴 들어보지 못했다. 그런데 현재 국회 정치발전특위와 한국정치학회가 향우회, 종친회, 동창회, 산악회 등 각종 동호인회와 계모임의 자유로운 정치활동을 보장하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논의 중이다. 이리 바뀌면 정치인과 사진을 찍으려는 수요가 폭증할 가능성이 높다. 일부 스타 정치인은 미국처럼 돈을 받고 사진을 찍어줄지도 모르겠다.

글=한민수 논설위원, 삽화=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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