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 뉴스] 그 얼굴… 타임머신 올라탄 몽타주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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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3월 18일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집 근처 골목길에서 놀던 이정훈(당시 3세)군이 사라졌습니다. 가족들이 애타게 찾았지만 정훈이는 아직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군의 가족들은 44년이 지난 최근 불혹을 넘긴 이군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게 됐습니다. 최신 ‘몽타주’ 기법 덕분입니다. 몽타주 속 남성 얼굴에서 세 살배기 이군의 증명사진 속 이목구비가 보이시죠? 86년 대전 대덕구에서 실종된 김호(당시 3세)군도, 95년 서울 구로구에서 사라진 조하늘(당시 4세)양도 이렇게 현재 모습을 가늠할 수 있게 돼 실종자 수사에 힘을 받게 됐습니다.

몽타주라고 하면 흉악한 표정의 지명수배자 얼굴이 떠오르신다고요? 요즘 몽타주를 모르는 분이라면 그럴 수 있습니다. 직접 손으로 그리는 ‘인물화’를 벗어나 컴퓨터 몽타주 시스템으로 탈바꿈한 게 99년입니다. 1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요즘 경찰은 최신 몽타주 제작 프로그램 ‘폴리스케치’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3D, 나이 변환…몽타주의 변신

폴리스케치는 지난해 12월 말 경찰청, 서울경찰청, 경기남부경찰청, 부산경찰청 네 곳에 한 대씩 설치됐습니다. 개당 4000만원에 달하는 이 최첨단 프로그램이 본격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한 건 지난 3월입니다. 지난달에는 충남, 전남경찰청에도 도입됐습니다. 이제 전국에 총 6대가 있는 거죠.

이 시스템의 토대는 ‘인공지능 기계학습’을 통해 습득한 한국인의 얼굴 데이터베이스(DB)입니다. 덕분에 목격자의 진술이 구체적이지 않아도 한결 수월하게 몽타주를 그려낼 수 있습니다.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수십 가지 얼굴이 제시되면 기억 속의 범인과 비슷한 인상을 골라내는 작업만 거듭하면 됩니다. 이 과정이 반복될수록 목격한 얼굴과 가장 흡사한 얼굴에 근접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머리, 수염, 안경, 옷 등의 디테일을 추가합니다.

이렇게 추출된 몽타주는 3차원 형태로 자유롭게 변형할 수 있습니다. 폴리스케치가 ‘3D 몽타주’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이유입니다. 조명, 표정 변화 등을 두루 표현할 수 있고 위, 아래, 옆 등 원하는 각도에서 얼굴이 어떻게 보이는지도 돌려볼 수 있습니다. 전체적인 인상도 조절할 수 있습니다. ‘비열한 인상’ ‘공격적인 인상’ ‘날카로운 인상’ ‘매력적인 인상’ 등의 ‘옵션’을 추가하는 식입니다.

누가 뭐래도 폴리스케치의 꽃은 ‘나이 변환’ 기능입니다. ‘노화’에 따른 얼굴의 변화를 표현하는 겁니다. 최대 100세까지 나이를 조절해 특정 시점의 모습을 파악할 수 있다고 하네요. 몽타주 속의 타임머신인 셈이죠.

실종자 찾기부터 미제사건까지

나이 변환 기능은 이군과 김군, 조양의 사례에서 보듯이 ‘실종아동 찾기’ 분야에서 효자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경찰은 지난 5월 25일 세계 실종아동의 날을 맞아 12명의 몽타주를 만들었습니다. 현재 실종아동 100여명의 부모들이 나이 변환 기능으로 아이의 현재 얼굴을 찾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상태입니다.

성과도 있었습니다. 올해 운영이 시작되자마자 지난 3월 경기남부경찰청에 12살 때 실종된 A씨(현재 50세)의 몽타주를 그려달라는 의뢰가 들어왔습니다. 50세 A씨의 얼굴을 몽타주로 뽑아내고 전단지로 만들어 실종 장소인 청평유원지 인근에 붙였습니다. 경찰은 한 달 만인 지난 4월 제보를 바탕으로 A씨를 가족 품에 돌려보낼 수 있었습니다.

올해 초에는 아동학대 전수조사에도 활용됐습니다. 경기도 평택경찰서에는 지난 3월 “초등학교에 입학했어야 할 아이가 오지 않는다”는 학교 측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부모는 아이 실종신고를 한 상태였습니다. 아이의 현재 모습을 파악하고자 나이 변환 기능 등으로 몇 개월 동안 아이 머리가 얼마나 자랐을지, 초췌하게 야위었을지 등을 반영한 몽타주를 만들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몽타주가 완성되고 며칠 뒤 아이는 시신으로 발견됐습니다. 신원영군입니다.

물론 몽타주는 ‘범인’ 찾는 본업에도 충실합니다. 특히 미제사건전담팀의 ‘러브콜’이 이어집니다. 용의자의 현재 모습을 추정할 수 있기 때문이죠. 지난 7월 8일 경북경찰청이 경찰청에 연락을 해왔습니다. ‘발생 당시 몽타주 파일이 있는데 나이 변환 기능으로 현재 모습을 찾아 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2003년 1월 경북 안동에서 택시기사 A씨(52)를 살해·유기한 뒤 택시를 몰고 다니다 20대 여성을 성폭행한 사건의 수사를 위해서였습니다. 당시 피해여성 진술로 비춰 용의자는 지금 30∼40대로 추정됩니다.

지난 5월 18일에는 제주경찰청 미제사건전담팀에서도 비슷한 의뢰가 들어왔습니다. 2007년 9월 16일 서귀포시 음식점 앞 도로 위에서 40대 여성이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을 수사하는데 범인의 현재 몽타주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제주경찰청 관계자는 “새 몽타주로 확보한 용의자의 얼굴을 바탕으로 탐문 수사 등을 진행하며 실마리를 찾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몽타주의 ‘활로 찾기’

최첨단 기법에도 불구하고 몽타주 작성은 매년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0년 247건이던 몽타주 작성은 매년 감소해 2014년 64건으로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지난해는 74건으로 조금 늘어났죠. 올 들어 만들어진 몽타주는 26건입니다. 이 가운데 폴리스케치로 작성한 몽타주가 20건 안팎입니다. 고영재 경찰청 현장지원계장은 8일 “CCTV와 블랙박스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몽타주 수요는 줄어들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에 따라 경찰은 CCTV가 빈틈없이 설치된 대도시보다는 지방에서 활용도가 더 높다고 보고 내년에 경남경찰청과 경기북부경찰청에 폴리스케치를 하나씩 도입할 예정입니다. 경찰청 현장지원계에서 몽타주 제작을 담당하는 이상숙 행정관은 “제작 건수는 줄어들지 몰라도 CCTV나 블랙박스가 없는 사건, 미제사건이나 미아 찾기 등 새로운 영역에서 결정적인 순간에 몽타주가 중요한 실마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몽타주의 발전 가능성은 무한합니다. 폴리스케치 개발을 주도한 김익재 한국과학기술원(KIST) 영상미디어연구단 책임연구원은 “증인과 목격자, CCTV까지 없는 경우 머리카락 등 유전자 정보만을 바탕으로도 몽타주를 제작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계속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와 벨기에 루벤가톨릭대 연구진은 유전자에서 얼굴 특징을 결정하는 정보를 추출해 3D로 재현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신기술로 중무장한 몽타주의 활약을 앞으로도 기대해봅니다.

글·사진=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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