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염성덕] 해운업 몰락을 방치할 텐가 기사의 사진
정부와 채권단이 한진해운 법정관리 과정에서도 큰 실책을 범했다. 대우조선해양에 이어 두 번째로 패착을 둔 것이다. 무능과 부패, 방만 경영과 분식회계, 혈세 지원과 낙하산 투입 등 대우조선해양을 둘러싸고 정부와 채권단, 경영진이 잘못한 것을 열거하면 끝이 없다. 앞으로 혈세가 얼마나 들어갈지 가늠하기도 어렵다. 생존을 장담할 수도 없는 상태다.

해운업 구조조정 과정에서도 정부는 여러 차례 실기(失機)했다. 2009년 구조조정 필요성이 대두됐고 2011년 해운업 불황이 시작됐다. 이 기간을 허송세월하더니 지난해 12월 실효성 없는 카드를 꺼냈다. 1조4000억원의 선박펀드를 만들어 국적 해운사를 지원한다는 계획은 그럴듯해 보였다. 하지만 부채비율이 400% 이하인 기업만 지원할 수 있어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엔 화중지병이었다.

불황의 골이 깊어지고 정부가 구조조정을 미루는 사이 두 회사는 자력 회생이 불가능한 업체로 전락했다. 유동성 위기 전에 선제적 조치를 취하고 비상플랜을 가동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현대상선은 산업은행의 관리회사로 편입됐고, 한진해운은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물동량을 기준으로 하면 한진해운은 세계 7위였고, 현대상선은 14위였다. 두 회사가 정상적으로 합병했으면 5위로 도약했을 것이다. 1∼3위와는 격차가 있지만 4위와는 경쟁할 만한 몸집이었다. 비용 절감 등 시너지 효과도 상당했을 것이다. 아쉽게도 그런 희망은 여지없이 산산조각 났다.

법정관리에 들어간 한진해운의 후폭풍은 경영진, 정부, 채권단의 무능력과 무사안일, 책임 회피와 맞물리면서 일파만파로 번졌다. 중·장기 대책 마련에 실패한 정부는 물류대란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기만 했다. 현대상선이 한진해운의 우량 자산을 인수하고 한진해운의 운항 노선에 현대상선의 대체 선박을 투입하겠다는 정부의 초기 발표는 너무 한가하고 무기력한 방안이었다.

한진해운의 선박 141척 중 상당수가 유령선처럼 바다에서 표류하는데 대체 선박 일부를 투입한다고 막힌 물류 길이 뚫릴 리 없다. 앞으로 한진해운 때문에 피해를 본 이들이 천문학적 규모의 손해배상소송 등을 제기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한진해운이 패소하면 우량 자산이 얼마나 남을지 의문이다.

물류대란이 악화하고 있는데도 경제 사령탑인 기획재정부와 산업을 담당하는 산업통상자원부는 제 역할을 못했다. 구조조정을 일선에서 지휘하는 금융위원회와 해운·항만·물류의 주무부처인 해양수산부는 지엽적인 방안만 내놓았다. 기가 막힌 발언도 쏟아졌다. “물류대란을 예상하지 못했다.” “한진해운이 자료를 주지 않아 대비하기 어려웠다.” “컨테이너사의 법정관리는 처음이라서….” 이런 인사들이 물류대란을 해결할 능력이나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정부와 한진해운이 늦었지만 자금 관련 방안을 내놓은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정부는 한진해운의 담보 제공을 전제로 장기 저리 자금 1000억원가량을 지원하고, 한진그룹은 100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이 정도로는 물류대란을 해결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급기야 법원은 7일 “물류대란을 해결하고 한진해운을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이번 주 안으로 자금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도 법원은 중립적인 기관이다.

정부, 채권단, 법원, 한진해운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 이대로 파국을 맞을 수는 없다. 추락하고 있는 해운업이 몰락하도록 방치하면 안 된다. 정부와 채권단이 구조조정 원칙만 강조하거나 한진그룹이 제 살길만 고집하기에는 한진해운법정관리의 충격이 너무 크다.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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