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순만 칼럼] 지식인의 매몰 기사의 사진
최근 우리 언론에 대해 얘기해 준 두 사람을 소개한다. 한 사람은 더위를 피해 하루 종일 공공도서관에서 역사책을 읽던 노신사다. 그는 7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들과 씨름하다가 저녁 무렵에 한 시간 정도 국내 일간지들을 정독한 후 집으로 갈 준비를 했다. 조간신문을 왜 저녁때에 읽느냐는 질문에 그는 “한국 언론은 너무 부정적인 뉴스들을 다루고, 논평도 그렇기 때문에 오전에는 읽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신문을 구문(舊聞)으로 읽을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노 역사학자가 이런 독서습관을 갖도록 만드는 한국의 신문은 어떤 구조에서 만들어지는지를 생각해 본다. 한국 언론은 금방 무슨 일이 생겨날 것처럼 몰아친다. 급박하다. 권력이나 자본의 갈등에 편파적으로 가담한다. 노골적이다. 얼마 전 불거진 유력 언론사의 전직 주필 문제도 그런 부작용 중의 하나일 것이다. 신문사의 주필이라면 시사적 이슈를 재단하고 논평하는, 시대성까지 대표할 만한 지식인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우리사회의 유력 지식인들이 지성적 유력함보다는 패권적 영향력에 집착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자신을 제어하는 힘과 생각의 깊이를 추구하기보다는 글 몇 줄의 현실적 영향력, 세속적 권력에 접근하는 힘, 배타적으로 접대 받는 유력함 따위를 추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나라의 지식인들은 이런 것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잃는 순수성의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같다. 해당 신문사 측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그동안 관행이라는 명분으로 이어졌던 취재방식을 바꾸겠다”고 밝혔지만, 그동안 있었던 유력함의 추구, 혹은 그런 과시적 행위를 ‘관행적 취재’라고 얼버무릴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혼자서 대우받는 특혜성 취재를 즐겼고, 이런 유형의 취재가 상당수 출입처에서 이루어졌고, 그것을 바쁜 유력 언론의 위상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면, 그들이 차고 있던 지성의 시계는 오래전에 배터리가 방전된 상태였을 것이다.

권력자들이 이런 점을 알면서도 유력 언론이라는 점을 이용해 국가 최고 사정기관의 수장이 낙마할 만한 사안을 흘려준다면, 그러다가도 자신들을 비판하면 얼마 후 난데없이 어떤 국회의원이 그 신문사 주필의 비위자료를 흔들어댄다면, 이건 얼마나 사악한 시스템인가. 장관들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보면 우리나라의 유력 인사들은 3억원짜리 아파트를 20여억원에 파는 특별한 노하우를 갖고 있다. 정말이지 한국의 지식인들은 고민하지 않고 사는 것 같다.

두 번째로 소개할 것은 한 사형수의 말이다. 그는 최근 있었던 면담시간에 “보수정권이 되면서 교도소·구치소의 모든 행정이 통제와 감시 위주로 변했다. 지금은 수감자에 대한 최소한의 인권도 거론하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말했다. “힘이 있는 보수신문들은 이런 데 관심이 없다. 그렇다고, 내가 진보신문을 읽는다는 말은 아니다. 진보신문은 사소한 사안도 너무 비틀고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보도해 힘없고 약한 사람들을 맥 빠지게 만든다.”

오늘의 한국 지식인들은 ‘권력을 추구하는 데 지식을 사용하는 사람’이 돼 가고 있다. 요 몇 년간 자신과 성향이 같지 않으면 적으로 간주해 버리는 경향은 특히 심해졌다. 독일 철학자 니체는 프랑스인들이 부러운 것 세 가지로 예술의 형식을 즐기는 능력을 갖춘 것, 소수의 의견도 존중할 줄 아는 도덕적 우수성을 지닌 것, 일상에서 북방의 대륙성과 남방의 내륙성을 조화시키는 힘이 있는 것 등을 꼽았다. 130년 전에 낸 저서 ‘선악의 저편’ 중 8장 ‘민족과 조국’에 나오는 내용이다. 프랑스인도 부럽지만, 이웃나라 사람을 칭찬하는 글을 쓰는 니체도 부럽다.

임순만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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