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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박서보 선생 사랑 40년 화업 정리하는 개인전 여는 김용익

자기반성과 변신, 그의 미술인생은 그랬다

[인터뷰] 박서보 선생 사랑 40년 화업 정리하는 개인전 여는 김용익 기사의 사진
1980년대와 90년대 ‘땡땡이 작업’ 앞에서 포즈를 취한 김용익 작가. 그는 “소외지역 생활환경 개선으로 출발했던 마을미술프로젝트가 점점 분칠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일민미술관 제공
“이 도둑놈, 죽일 놈, 나쁜 놈아!”

지난해 단색화 작가 하종현(81) 개인전이 열렸던 모 화랑. 홍익대 교수 출신으로 단색화의 대부인 박서보(85) 선생은 전시장에서 들른 한 제자를 보고 ‘욕 3종 세트’를 쏟아 부었다. 수십 년 소원했던 서운함을 그렇게 걸쭉한 농담으로 날려보낸 것이다.

1980∼90년대 단색화 시대의 흔적을 지우려던 시도였던 ‘땡땡이 그림’ 앞에서 그 일화를 전하며 웃는 김용익(69)도 어느덧 백발이 성성하다. 서울 종로구 일민미술관에서 40년 화업을 정리하는 개인전 ‘가까이… 더 가까이’전이 열려 추석 전인 12일 그를 만났다. 70년대 단색화 시기부터 2010년대 공공미술까지 현대미술사의 궤적이 그의 화업 속에 삼투한다.

김 작가는 미술계에서 단색화의 막내로 통했다. 70년대 천 주름의 착시 효과를 활용한 ‘평면 오브제’로 화단에 입성했다. 무채색 천 작업은 지금은 단색화로 불리는 모노크롬 회화를 이끌던 박서보 선생의 사랑을 듬뿍 받은 작품이다. 그는 학부 졸업도 마치기 전인 1975년 상파울루 비엔날레 출품 작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81년 그는 천을 사용해 만든 작품들을 종이 박스에 넣어 봉인했다. “더 이상 모노크롬과 어울리지 않겠다는 선언이었어요. 80년 광주 사태, 이어진 3김 시대 등 정치적 요동이 내 작품 세계조차 흔들었던 거지요.”

홍대 출신인 그는 서울대 중심의 민중미술 진영에도 합류하지 못했다. 어느 쪽에도 끼지 못한 외롭고 힘든 시기였다. 대신 미술이 뭔지, 회화가 뭔지를 캐물으며 잠행의 시간을 보냈다. 97년까지 이어진 일명 ‘땡땡이 작업 시대’다. 가까이 가서 보면 캔버스에 그려진 땡땡이는 기존의 작업을 지우는 행위이다. 낙서로 더렵혀져 있기도 하다. 그렇게 모더니즘의 권위에 균열을 냈다.

97년 금호미술관 개인전을 계기로 ‘인맥 상’ 민중미술 진영과 가까워졌다. 한국 현대미술을 민중미술과 모더니즘의 이분법으로 보는 것에 반대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작가 김용익에 주목한 전시였다. 90년대 말부터는 그의 표현대로 ‘좌클릭’ 하며 활동 영역을 넓혀 광주비엔날레 관치 철폐 범미술위원회 위원장을 맡기도 하고, 진보적 대안공간인 아트 스페이스 풀 운영에도 참여했다.

2000년대 들어 그는 다시 변신한다. “모더니즘 미술에 대한 반성이지요. 미술의 합리주의를 믿었는데, 미술이 사회와 고립된 채 폐쇄회로에 갇혔다는 절망감이 덮쳤지요.”

공공미술에서 답을 찾은 그는 양평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환경미술 및 지역미술 운동에도 관심을 뒀다. 2013년 경원대 미대교수에서 정년퇴직한 이후에는 농업미술 실험도 했다.

신작인 ‘관 시리즈’가 눈길을 끈다. 40년 남짓 작품 활동을 해온 결과물을 관 형태의 나무 상자에 넣어 봉인하고 명복을 비는 도상과 글을 덧붙이는 제의적 행위를 하는 작품이다. 주기적인 자기반성과 변신, 그의 미술인생이 그랬다. 추후 보여줄 변신이 궁금하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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