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유영만] 직선적 지식, 곡선적 지혜 기사의 사진
“직선은 인간이 만든 선이고, 곡선은 신이 만든 선이다.” 스페인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의 말이다. 자연에도 직선은 없다. 본래 곡선이었던 자연을 인간이 직선으로 만들었을 뿐이다. 아날로그의 여유로운 곡선이 디지털의 빠른 직선으로 바뀌면서 변화의 속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최근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이 밀려오면서 변화의 속도는 더욱 가파르게 빨라지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자동화와 융합화 그리고 연결화다. 인공지능이 발달하면서 자동화는 가속화되고 있고 개별적으로 발달한 다양한 정보기술이 기술적으로 융합되면서 생각지도 못한 혁신적 변화가 일상화되는 일들이 바로 제4차 산업혁명이 몰고 오는 변화의 조짐들이다.

인간이 만든 기술이 인간을 위협하는 시대, 인간은 과연 어떤 역할을 발휘할 것인지가 관심사다. 변화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속도에서 벗어나 삶을 바라보는 각도를 중시할 필요가 있다. 속도가 빨라질수록 다르게 볼 수 있는 각도는 좁아지기 때문이다. 변화의 속도에 떠내려가지 않기 위해서는 급속도로 돌아가는 변화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나 이전과 다른 각도에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직선으로 질주하는 속도를 멈추고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의 시간은 물음표의 곡선에서 비롯된다. 우리가 던져야 할 곡선의 물음표 중의 하나, 과연 기술 발전과 성장의 속도에 맞춰 인간적 성숙도 함께 깊어질 수 있는가이다.

속도 속에서는 성숙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 속도의 친구는 양적 성장이다. 속도를 내면 양적으로 축적이 가능하다. 속도는 각고의 노력을 거부한다. 속도의 본질은 더 많은 것을 획득하면서 더 빨리 목적지에 도달하는 데 있다. 하지만 지식의 양적 축적과 이를 근간으로 이루어지는 신속한 판단은 이제 인간보다 기계가 더 잘할 수 있다. 방대한 빅데이터를 분석해 복잡한 상황에서도 현명한 판단과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인공지능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이런 시기일수록 인간은 기계가 할 수 없는 고유한 능력을 개발함으로써 인간다움을 추구해야 한다. 그것이 인간의 아름다움을 빛내는 길이다. 인간의 아름다움은 성숙과 숙성에서 비롯되는 사람다움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능력은 풍부한 지식보다 깊은 체험적 지혜다. 지식이 아무리 빠르게 양적으로 축적되고 공유되어도 체험적 깨달음이 가미되지 않으면 질적으로 성숙되지 않는다. 답이 없는 상황에서 곡선의 물음표를 던져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는 가운데 전대미문의 경이로운 감동의 느낌표가 다가온다. 직선의 마음은 급하게 지식을 만들어내지만 곡선의 마음은 때를 기다리며 지혜를 잉태시킨다. 물음표가 느낌표로 바뀌려면 기다려야 한다. 기다려야 물음표가 던진 호기심과 궁금증이 다양한 시도와 모색을 통해 감동의 느낌표로 숙성되어 우리에게 다가온다. 이때 다가오는 감동의 느낌표가 바로 곡선적 지혜다.

세상의 지식이 나의 지혜로 숙성되는 길은 각고의 노력을 통과하는 수밖에 없다. 지식은 밖에서 오지만 지혜는 내면에서 숙성되어 생긴다. 세상은 풍부한 지식으로 뭔가를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사람보다 자기만의 체험적 지혜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감동시키는 사람이 이끌어간다. 지식은 직선적 논리의 산물이지만 지혜는 우회축적하면서 체득한 곡선적 시행착오의 산물이다.

빠르게 축적한 지식은 기계의 지능을 능가할 수 없다. 기계적 지능이 인간적 지능을 능가하려는 새로운 변혁기에 우리에게 더욱 필요한 것은 숱한 시행착오와 우여곡절의 체험을 통해 축적된 곡선적 지혜다. 지혜로 세상을 내다보는 혜안과 상상력은 지식으로 다져진 유식함을 능가한다. 직선으로 속성 재배한 지식은 생각지도 못한 예측불허의 상황에서 속수무책이다. 지금은 우리에게 곡선으로 숙성된 지혜, 촌철살인의 번뜩이는 통찰력과 복잡한 관계 속에서 패턴을 찾아 전체를 꿰뚫는 직관력이 필요한 시기다.

넘어져보지 않고 빠른 시간에 성공한 사람들은 풍부한 지식을 지니고 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딜레마를 탈출하거나 복잡한 문제를 순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지혜는 부족하다. 똑똑한 전문가, 책상지식으로 무장한 인재들은 양산되고 있지만 체험적 지혜와 내공으로 무장한 진정한 전문가는 부족하다. “지식은 학교교육의 결과이지만 지혜는 평생을 통해 분투노력해서 얻은 체험적 깨달음이다.” 아인슈타인의 말이다. 딜레마 상황에서 위기를 탈출하고 문제의 해법을 제공하는 힘은 교육을 통해서 배운 직선적 지식이 아니라 시행착오의 체험으로 축적된 곡선적 지혜다.

유영만 한양대 교육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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