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한민수] 직업 쟁탈전 기사의 사진
지금 생각해도 그 말은 하지 않는 게 좋았다. 설 이후 7개월여 만에 다시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던 추석 밥상머리는 차갑게 식어 버렸다. 대학 졸업을 앞둔 조카에게 오지랖 넓게 취업 준비가 어떻게 되고 있냐고 물었다. “뭐 그저 그래요”라는 답이 돌아왔을 때 멈췄어야 했는데… 우리 때는 말이야, 이게 분란의 시초가 됐다.

1990년대 초는 꼭 명문대가 아니어도 어지간한 대학생은 졸업과 동시에 취업이 됐다. 어느 날 과(科) 사무실에 한 기업의 입사지원서가 돌아다녔다. 조교는 4학년 후배들에게 원서를 넣으라고 읍소형 권유를 했다. 교수나 그 회사 인사 담당 선배로부터 원서 접수를 ‘청탁’받은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흥미를 보인 친구는 없었다. 지원했으면 100% 입사가 됐을 법한 그 회사는 현재 굴지의 통신업체 A사다. 이 일화에 조카는 분노를 드러냈다. “우린 온갖 스펙을 쌓아도 취직이 잘 안 되는데… 삼촌은 무슨 자랑이라고 몇 번씩이나 그 얘길 해요!”

그런데 그 적개심은 조카 한 명의 문제가 아니었다. 인하대 이은희 소비자학과 교수는 최근 발표한 논문 ‘20대 청소년세대의 고민과 경제 문제에 대한 탐색적 연구’에서 극심한 취업난 속에 20대가 ‘486세대는 공부는 안 하고 시대를 잘 타고나 취직한 주제에 학벌·자격증 등 스펙이 훨씬 뛰어난 우리를 무시한다’는 불만을 갖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들이 ‘시대의 희생양’이라는 피해의식을 느끼면서 세대 갈등도 커지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우리 사회 곳곳에서 세대 간 충돌이 벌어질 조짐이다. 퇴직 후에도 노동력이 왕성한 중·장년층은 20대의 알바 자리까지 치고 들어갔다. 이러다가는 조만간 아버지와 아들, 삼촌과 조카가 하나의 일자리를 놓고 얼굴을 붉힐 가능성도 높다. 경제 호황기에 혜택을 받은 기성세대로서 취직을 못해 좌절하는 우리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답답하다. 글=한민수 논설위원, 삽화=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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