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홍덕선 <9> 기독교 문화 전파 위해 ‘예술 선교’ 단체 이끌어

미술인선교회 회장 등 최일선 활동, 신이나서 쓰다보니 개인전 26회나

[역경의 열매] 홍덕선 <9> 기독교 문화 전파 위해 ‘예술 선교’ 단체 이끌어 기사의 사진
홍덕선 장로(앞줄 왼쪽 네 번째)가 1995년 ‘제8회 기독교문화대상’을 수상한 뒤 촬영한 기념사진.
1992년 9월 한국예술인연합선교회가 발족하면서 나의 사역도 새롭게 시작됐다. 특히 단체 산하에 있는 한국미술인선교회는 크리스천 서예가로서 본격적인 삶을 살아가도록 만든 활동의 새로운 거점이었다. 나는 한국미술인선교회 초대 회장에 선임됐다. 부회장에는 당시 이화여대 미대 학장이던 최병상 교수가 임명됐고 내로라하는 크리스천 작가들이 단체에 가입했다.

우리는 발족 이듬해인 93년 12월 서울 이화여대 미술관에서 ‘제1회 대한민국기독교미술대전’을 개최했다. 동양화 서양화 서예 조각 등 각 부문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을 상대로 공모를 진행해 약 80명에게 상을 수여했다. 이 시상식은 현재까지도 계속해서 맥을 이어오고 있다.

한국미술인선교회 회장을 내려놓은 뒤에는 94년부터 한국예술인연합선교회 회장을 2년간 맡았다. 기독교 문화를 알리고 보급하는 일에 앞장서고 싶었다. 당시까지 한국교회는 예술 선교에 너무 무관심했다. 하나님 뜻을 좇는 음악가나 화가는 많은데 이들을 한곳에 묶는 조직이 없었다. 한국예술인연합선교회는 예술 선교의 최일선에서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하는 단체였다.

서예가로서 일평생 살아오며 언제나 붙든 질문은 ‘좋은 글씨는 어떤 글씨인가’라는 것이었다. 붓글씨는 미묘하면서도 복잡한 세계다. 좋은 글씨가 무엇인지 답을 내리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많이 쓰면 글씨에 힘이 생기고, 나름의 서체가 만들어진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글씨를 많이 쓰다보면 어느 순간 누군가의 글씨를 볼 때 이것이 좋은 글씨인지 단번에 알게 된다.

서예가로 활동하며 내가 받은 상은 한두 개가 아니었다. 그 중에서 가장 영예로 여겨지는 상은 95년 수상한 ‘원곡서예상’이다. 나를 진정한 서예가의 길로 이끈 원곡(原谷) 김기승(1909∼2000) 선생의 업적을 기른 상이었기에 의미가 남달랐다. 좋은 글씨가 무엇인지, 서예가의 삶은 어때야하는지를 가르쳐준 분도 원곡 선생이다. 나는 같은 해 8월에는 ‘기독교문화대상’도 받았다.

90년대는 무슨 일을 하든 술술 풀린 시기였다. 매일 신바람이 나서 글씨를 쓰고 다양한 활동에 가담한 기억이 난다. 서예에 조금이라도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내 이름을 알고 있었다. 작품도 잘 팔렸다. 무슨 일이든 잘 되다보니 수시로 주님께 감사기도를 드렸다.

개인전도 수차례 열었다. 최근까지 내 이름을 걸고 연 개인전은 26회다. 원곡 선생의 ‘기록’은 35회다. 내가 이 기록을 깰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부지런히 써서 죽는 날까지 30회 넘는 개인전을 열겠다고 다짐할 때가 많다. 서예가로 근면성실하게 사는 게 내 평생의 목표이기도 하다.

90년대는 내 인생의 황금기였지만 90년대 후반으로 오면서 씁쓸한 감상에 젖을 때가 많아졌다. 서예의 인기가 시들해졌기 때문이다. 서예를 돈 주고 배우는 문화도 서서히 사라졌다. 구청 등지에서 공짜로 서예를 가르치는 강좌를 개설하면서 수강생도 서서히 줄었다.

서울 청파동에서 20년 가까이 운영하던 서예학원을 접은 것도 이때쯤이었다. 그동안 내가 가르친 학생은 몇 명이나 될까. 1000명은 넘는 것 같은데 정확한 숫자를 계산한 적은 없다.

정리=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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