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태원준] 총리공관의 9000원 전복죽 기사의 사진
고위 당·정·청 회의가 21일 총리공관에서 열렸다. 조찬회의여서 아침을 먹는데 전복죽이 나왔다. 한 그릇에 9000원짜리를 인근 식당에서 가져왔다. 1인당 3만원이 넘는 케이터링 서비스 부르던 걸 ‘김영란법 예행연습’ 차원에서 바꿨다고 한다. 정부 공식 행사여서 김영란법이 적용되지 않지만 “국민 정서를 고려해” “시범을 보이기 위해” “검소한 식사문화에 앞장서려” 그랬다고 설명했다.

총리실은 김영란법 취지를 단단히 오해한 듯하다. 이 법은 비싼 거 먹지 말자는 게 아니라 내 돈 내고 먹자는 것이다. 절약하자는 게 아니라 부패하지 말자는 법이다. ‘공직자 등’에게 비싼 밥을 사는 일이 부패로 이어질 수 있어서 상한선을 둔 것이지 비싼 밥을 먹는 게 부도덕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부패 우려가 없어 예외로 한 자리에서 이런 연습을 하는 건 ‘비싼 밥=나쁜 밥’이란 인식을 퍼뜨릴 위험이 크다. 공직사회가 어떤 곳인가. 총리실이 하면 그 밑에 있는 정부 부처, 공공기관이 줄줄이 저렇게 할 것이다. 이런 자리에 케이터링하는 업체들, 거기에 납품하는 업체들은 총리실 ‘시범’을 보면서 죽을맛이었을 게다. 김영란법의 최대 걱정거리인 소비 위축을 앞장서서 재촉한 꼴일 수도 있다.

정부가 보여야 할 시범은 따로 있다. 김영란법은 부정 청탁과 금품 수수를 금지한다. 금품 수수 금지도 결국 청탁을 들어주지 말라는 소리다. 핵심은 만연한 부정 청탁을 근절하는 데 있다. 대학병원에 가족의 입원실을 부탁하는 것, 학생이 교수에게 학점을 사정하는 것까지 부정 청탁의 범주에 넣었다. 그런데 평생 연설문만 다듬던 청와대 비서관이 갑자기 금융회사 임원이 되도록 말을 넣어주는 것만큼 부정한 청탁이 어디 있나. ‘낙하산’은 권력을 이용한 갑의 청탁이고, 을로선 거절할 도리가 없기에 가장 악질적인 청탁이다. 곧 금융기관장 11명이 줄줄이 바뀐다. 공기업 다니는 친구에게 아들 일자리 부탁하는 아버지를 처벌하려거든 낙하산 인사부터 그만두라.

태원준 논설위원, 그래픽=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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