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폐장 38년 논란 결론내자 <1부>] 규모 3.5 여진에… 지상은 흔들·지하 방폐장은 ‘조용’ 기사의 사진
①국내 원자력 발전 역사 38년만인 지난해 8월 문을 연 경주 방폐장 내 동굴처분시설 입구 모습. ②월성원전에서 발생한 중저준위 방폐물을 실은 폐기물 운반 차량이 지난 3월 경주 방폐장 지상에 설치된 인수저장고 인수 검사시설 앞에서 입고를 기다리고 있다. ③한국원자력환경공단 직원이 지난 21일 경주 방폐장 내 동굴처분시설에서 지진 감지 설비를 살펴보고 있다. ④5번과 8번 사일로(원통형 처분시설) 사이에 설치된 지진 감지계 모습. ⑤사일로 내부 모습. ⑥경주 방폐장 동굴처분시설 내 모습. 진동에 견딜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공기정화계통에 철제 프레임이 설치돼 있다. ⑦강진에 중단됐던 인수검사가 재개된 21일 경주 방폐장 인수저장고에서 폐기물 드럼들이 검사를 기다리고 있다. 경주=김유나 기자, 한국원자력환경공단 제공

이전이미지다음이미지

이미지를 크게 보려면 국민일보 홈페이지에서 여기를 클릭하세요

국내 원자력 역사 38년 만인 지난해 8월 우여곡절 끝에 문을 연 경북 경주 양북면의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처분장. 경주 방폐장은 원자력발전소 등에서 사용된 작업복이나 장갑, 부품 등 방사선 함유량이 적은 중저준위 폐기물을 처분하고 있다. 국민일보는 경주에 최근 5.8의 강진이 발생한 이후 크고 작은 여진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방폐장 안에 직접 들어가 봤다. 하지만 지상에서 지진 여파가 계속되는데도 방폐장 내부는 진동도 거의 느낄 수 없을 만큼 조용했다.

규모 3.5 여진에도 방폐장 내부는 조용

지난 21일 오전 국내 언론 최초로 들어가본 경주 방폐장. 출입 허가를 받은 차량을 타고 10도 경사각으로 이뤄진 깊이 1.4㎞ 유(U)자 모양 터널을 지나 동굴 진입로에 도착했다. 셔터가 열리고 처분장 내부로 연결되는 동굴 안으로 들어서자 휴대전화 전파는 터지지 않았고, 기압차 때문에 귀가 아파왔다. 특수복과 헬멧을 착용하고 처분장 문을 열자 외부 바람이 시설 안으로 강하게 불었다. 기압차 때문에 공기가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동굴 내부 압력을 낮춰 ‘에어록(air-lock)’을 만든 것이다.

지하 80m가량(최고 130m·건물 17층 높이)을 들어가자 동굴처분시설에 다다랐다. ‘사일로’라 불리는 높이 50m, 직경 25m 크기의 원통형 처분시설 6개가 설치된 곳이다.

오전 11시54분쯤 입구에 들어서자 상황실 유선전화가 울렸고 직원은 다급한 목소리로 “지상에서 3.5 규모 여진이 발생했다”고 알렸다. 하지만 동굴처분시설 지진 감지계는 특이사항이 없었다. 지상 건물들은 지반의 진동으로 흔들리지만 동굴처분시설은 암반에 설치됐기 때문에 지상보다 흔들림이 훨씬 적다. 이곳에서는 직원들이 유선으로 실시간 지진 상황을 공유하고 있었다. 실제로 5번과 8번 사일로 사이에 설치된 지진감지기를 확인한 결과 특이사항이 감지되지 않았다.

규정상 이곳 방폐장에는 지진 계측값 기준 지진가속도 0.01g(지진 규모 3)가 넘으면 경보가 울린다. 이때 말하는 지진 규모는 우리가 지상에서 느끼는 진동이 아니라 동굴 기준이다. 규모 5.1의 지진이 발생했던 지난 12일 오후 7시44분 사일로 인근 진동은 그보다 낮아 경보가 울리지 않았고, 규모 5.8의 지진이 발생했던 같은 날 오후 8시32분에는 0.03g(지진 규모 4)를 감지해 경보가 울렸다. 동굴처분시설은 지진가속도 0.2g(지진 규모 6.5) 이하에는 끄떡없고, 0.4g(지진 규모 7.2)까지 피해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진앙이 시설 인근에서 직접 충격을 줬을 때 기준이다. 따라서 지상에서 측정되는 7.2 규모 지진보다 훨씬 더 큰 지진도 견딜 수 있다는 얘기다. 취재를 마친 뒤 밖으로 나오자 동굴처분시설 안에 들어가기 전 왼쪽 가슴에 달았던 방사능 감지기 수치는 ‘0.0000m㏜(밀리시버트)’를 나타내고 있었다.

지난 12일 이후 중단됐던 방폐물 인수작업은 이날 재개됐다. 지상에 위치한 인수저장고에서는 중저준위 방폐물 발생지에서 검사를 통과해 운반된 폐기물들이 노란색 드럼통 안에 보관돼 있었다. 중량이나 표면 오염도 전수검사를 진행하고, 발생지에서 검사가 잘 이뤄졌는지 표본조사 중이었다. 인수저장고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출입구역 한쪽에는 ‘실시간 방사선량’ 모니터가 설치돼 있었다. 저장고 내부 방사선량은 0.214m㏜를 가리켰다. 일상생활 속 자연 방사선량은 0.3m㏜ 이하로 알려져 있는데 그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었다. 발생지부터 인수저장고까지 5차례 검사를 거친 중저준위 방폐물만이 동굴처분시설로 들어갈 수 있다. 수십년간 논란 끝에 들어선 경주 방폐장은 우려와 달리 지진이나 방사능 누출 위험은 거의 없어 보였다.

경주 방폐장에서 얻는 교훈

경주 방폐장은 갈등 해결의 모범사례로 꼽히지만 19년간 9차례나 유치 실패를 거듭하는 등 그 과정은 무척 지난하고 고통스러웠다. 1986년 문헌조사를 통해 경북 울진, 영덕, 영일 3개 후보지를 도출했지만 주민들이 반발하며 지질조사조차 진행하지 못했다. 이후 논의된 부지에서 주민 소요가 일어나거나 활성단층이 발견되는 등 진통을 겪다 2000년대 지자체를 대상으로 유치 공모를 실시했다. 2003년 전북 부안이 단독 공모했지만 주민 반대로 결국 무산됐고 2005년 11월 경주가 최종 후보부지로 선정됐다.

이후 ‘중저준위 방폐장 유치지역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2005년 지자체의 자발적 부지선정 공모를 통해 경주가 후보지로 떠올랐다. 주민투표 결과 89.5%의 찬성을 얻으면서 갈등이 첨예했던 방폐물 관리 사업의 실마리가 풀렸다. 하지만 경주 방폐장은 부지 선정과 준공에만 30여년이 소요됐다. 과제로 던져진 고준위 방폐장(사용후핵연료 처분 시설)은 더욱 험난한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

경주 방폐장에는 200ℓ 드럼 기준 총 80만 드럼이 처분될 예정이다. 현재 운영 중인 1단계 동굴처분시설의 처분 용량은 10만 드럼이다. 2019년까지 완공 예정인 지상의 표층처분시설(2단계)은 12만5000드럼을 처분할 수 있다. 고리·한빛·한울 원자력발전소 임시 저장고에 보관 중인 중저준위 방폐물이 전용 운송 선박과 트럭을 통해 한국원자력환경공단 환경관리센터로 운반된 뒤 인수검사를 거쳐 영구처분된다. 지진 발생 이후 불안해하는 주민들은 ‘2차 건설’에 반대한다는 현수막을 내걸기도 했다. 방폐장을 운영 중인 한국원자력환경공단 측은 26일 “운영 상황을 투명하게 공개해 주민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원자력환경공단 정성태 본부장 "안전한 운영과 소통이 고준위 방폐장 논의 앞당길 것"

지난 21일 경주 양북면에 위치한 방폐장 입구 공원에는 30여명의 지역 주민들이 작업복을 입고 방폐장 주변 조경 정비작업을 하고 있었다. 방폐장을 위해 삶의 터전을 내 준 주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소일거리를 만들어주자는 취지로 한국원자력환경공단 직원들이 아이디어를 낸 것이다. 한국원자력환경공단과 한국수력원자력은 본사를 경주로 이전하고 지방자치단체 발전기금 지원 등 경제적 혜택을 제공하고 있지만 지역 주민들에게 직접적 혜택을 줄 방법을 고민한 결과다.

공단 정성태 본부장은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경주 방폐장은 전 세계가 주목할 정도로 시설 안전성을 인정받고 있는 시설"이라며 "운영·관리를 국제 기준보다도 더 까다롭게 해오고 있기 때문에 국민들은 지진 상황에서의 안전성 역시 의심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지진과 여진으로 원전과 방폐장에 대한 우려가 나오지만 오히려 더욱 안전에 신경 쓰고 국민들과 적극 소통해 불안감을 해소하는 계기로 삼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정 본부장은 "내부적으로는 안전하다는 믿음이 있지만 크고 작은 여진이 발생하면서 국민들과의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고 있다"며 "불안해하지 않도록 시설이 안전한지 직접 보려는 주민들에게 내부를 공개하고 운영정보를 실시간 전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전날인 지난 20일 주민 대표기구인 월성원자력안전협의회 회원들이 방폐장에 다녀갔고 지자체가 주관하는 민간환경감시기구에는 직원들이 직접 찾아가 설명하기도 했다.

중저준위 방폐장인 경주 방폐장은 고준위 방폐장 건립에 중요한 판단 근거이자 징검다리로 작용하고 있다. 국내 유일의 방폐장인 만큼 안전성과 투명성 여부가 고준위 방폐장 논의를 앞당기거나 지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정 본부장은 "지진 같은 민감한 상황일수록 중저준위 방폐장을 안전하게 운영하는 것은 물론 이를 투명하게 알리고 소통하는 것만이 고준위 방폐장 논의에 신뢰를 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원자력환경공단은 처분시설 관련 중요 정보를 지역 주민들에게 이메일, 문자, 카카오톡 메신저 등을 통해 제공하고 있다. 정 본부장은 "지역 주민들이 먼저 안전하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방폐장 사업 수용에 대한 보답 차원에서 지역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는 정책을 함께 추진해야 한다"며 "해당 지역과 처분장이 함께 상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주=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