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 IOC 선수위원 유승민 “선수들 은퇴 후 복지·커리어 높이는 데 역점 둘 것”

[인人터뷰] IOC 선수위원 유승민 “선수들 은퇴 후 복지·커리어 높이는 데 역점 둘 것” 기사의 사진
한국을 대표하는 탁구선수에서 국제적 체육행정가가 된 유승민 IOC 선수위원은 선수들의 은퇴 후 복지나 커리어를 높이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또 임기 중에 맞는 평창 동계올림픽을 제대로 치르는 데 역량을 모으겠다는 각오를 털어놨다. 곽경근 선임기자
유승민(34)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은 무척 바빴다. 당초 추석 전 인터뷰를 할 생각이었으나 그의 일정 때문에 미뤄진 데다 만나기로 한 날을 코앞에 두고 또 시간을 조정해야 했다. 강원도 평창에서 열린 한·중·일 스포츠장관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 일행과의 약속이 잡혔기 때문이다. 지난달에만 대한체육회 이사와 선수위원장, 국제탁구연맹 선수위원에 잇따라 위촉되는 등 그는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다’는 말을 실감하는 듯했다. 인터뷰 다음 날 유 위원은 베트남 다낭에서 개최된 제35차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에 참석하기 위해 출국한다고 했다. IOC 선수위원으로서의 첫 해외 공식행사다. 유 위원을 지난 22일 그가 코치로 있는 경기도 용인의 삼성생명 탁구단 연습장에서 만났다. IOC 선수위원에 도전한 이유와 성공하기까지의 과정, 앞으로의 포부 등을 물었다.

-늦었지만 다시 한번 축하한다. 지난달 19일 리우올림픽에서 IOC 선수위원이 된 후 이전과 생활이 많이 달라졌을 것 같은데.

“무엇보다 많이 바빠졌다. 체육관에서 탁구를 치거나 가르치면서 늘 탁구만 생각했는데 요새는 탁구 아닌 일로 정신이 없다. 행동반경이 확실히 달라졌다. 리우에서 돌아온 후 언론사 인터뷰도 제법 했고, 이런저런 회의나 청와대나 국회 모임에도 다녔다. 선수위원이 되고 귀국한 후 가장 먼저 한 일이 양복을 세 벌 산 것이었다. 내 생활이 많이 변했다는 걸 단적으로 증명하는 사례지 싶다. 여태 양복 정장을 입을 일이 거의 없어 집에 변변한 양복이 없다. 나는 아직까지 넥타이를 맬 줄 모른다. 요즘엔 양복에 넥타이까지 갖춰야 하는 일이 종종 있어 아내 도움을 톡톡히 받고 있다.”



-출마 당시 다른 나라 후보들에 비해 “국제적 인지도가 좀 떨어진다”는 우려가 적지 않았다. 어떻게 선수들의 마음을 얻었나.

“나는 7월 27일 출발하는 우리 대표팀 전세기를 타지 않고 혼자 먼저 갔다. 공식 선거운동기간이 7월 24일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대표팀과 동행하면 선거운동 기간을 며칠 버려야 했기 때문이다. 23일 현지 도착 후 다음 날부터 선수촌을 누볐다. 공식 유세 첫날부터 선거운동을 한 후보는 나밖에 없었다. 일단 무조건 각국 선수를 만나 표를 호소했다. 내 옆을 지날 때마다 박수치며 응원해주는 우리 대표선수들이 큰 힘이 됐다. 당시 하루 14시간 정도 걸어 다녔다. 개막 하루 전 내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에 깔린 기록을 보니 26㎞가 찍혔더라. 선수 때도 생기지 않았는데 처음으로 발바닥에 물집이 잡혔다. IOC 선수위원 선발 규정에 후보가 선거 운동을 하면서 제3자의 도움을 받을 경우 자격이 박탈되기 때문에 철저히 혼자 올림피언(올림픽 출전 선수)들을 접촉하는 수밖에 없다. 솔직히 너무 힘들고 외로웠다. 마지막엔 지쳤다. 그래서 현지에서 당선 소감을 말하면서 나도 모르게 첫마디를 ‘외로웠다’고 한 것 같다.”



-IOC 선수위원으로 가장 관심을 갖는 것은.

“아직까지 IOC 선수위원이 어떤 자리고 무슨 역할을 하는지 정확히 모른다. 오는 11월 4일 IOC 본부가 있는 스위스 로잔에서 위원회 실무모임이 열리는데, 사실상 신임 위원들의 오리엔테이션 자리라고 한다. 우선 그곳에서 자세한 설명을 들어야 할 것 같다. 대체로 1년 정도는 해봐야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다고들 하더라. 아무튼 국제 스포츠 행정에 대해 열심히 배우겠다. 그리고 기쁨도 크지만 그에 못지않은 책임감 때문에 중압감도 많아 구체적으로 지금 당장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고 밝히긴 어렵다. 다만 평소 품은 생각은 있다. 올림픽 정신을 구현하는 일에 매진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짜봐야겠다고 느끼고 있다. 선수들의 은퇴 후 복지에도 관심이 많다. 맡고 싶은 분과는 선수를 위한 교육 부문이다. 선수들의 커리어 프로그램을 높이는 게 관심이다. 그런 일을 하면서 낮은 곳에서 현장에 있는 선수들의 의견을 대변하고 싶다.”



-언제부터 IOC 선수위원을 꿈꿨나.

“2004년 아테네올림픽 때인 것 같다. 당시 태권도 대표선수였던 대성 선배(문대성 선수)와 같은 동에 묵었는데 그에게 IOC 선수위원에 관한 얘기를 처음 들었다. 이후 막연한 꿈으로만 여기고 있다가 2011년 ‘피스앤드스포츠’컵 국제탁구 대회에 참가한 후 생각을 굳혔다. 말 그대로 스포츠를 통해 평화를 알리는 대회였는데 내가 북한의 김혁봉 선수와 한 조를 이뤄 미국과 러시아 팀을 물리치고 탁구 복식 금메달을 땄다. 가슴에 뭉클한 어떤 느낌이 왔다. 그러면서 ‘스포츠를 통해서도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을 많이 할 수 있겠구나’라는 확신을 가졌다. IOC 선수위원의 꿈을 구체적으로 다짐한 계기라 하겠다. 이는 내가 2012년 런던올림픽 탁구 국가대표 선수로 출전하게 된 원동력이었다. IOC 선수위원 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전회 또는 당회 올림픽에 반드시 선수로 출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2016년 IOC 선수위원을 노린 내게 런던올림픽은 마지막 기회였다.”



-어떻게 준비했나.

“우선 국내 후보가 돼야 한다. 작년 8월 국내에서 후보로 선발된 후 본격적으로 공부했다. 특히 올림픽과 IOC의 역사와 역할과 제도 등을 많이 공부했다.”



-IOC 선수위원은 영어를 잘해야 된다고 들었다. 실력이 어느 정도인가.

“영어가 당연히 중요하다. 평소 외국 선수들과 일상적으로 대화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는 수준이었는데 이 정도로는 안 된다고 느껴 나름 열심히 했다. 작년 여름부터 학원에 다니는 등 대략 하루 5시간 정도 매달렸다. 공부할 수 있도록 회사(삼성생명)와 선배 등이 배려해 줘 무척 고맙게 생각한다. 그 덕분인지 지난해 12월 IOC의 사전 전화면접도 통과한 것 같다. 또 유세 당시 다른 후보들과의 스피킹 이벤트에서도 무난한 평가를 받은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영어가 필요하긴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소통이다. 내 영어실력이 어느 수준인지는 나도 잘 모른다. 토익이나 토플 같은 시험을 쳐 본적 없어 다른 사람과 비교할 수 없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은 유 위원이 임기 중 맞는 첫 국제대회다. 더욱이 우리나라에서 열린다는 점에서 본인에게 의미가 남다를 것 같은데.

“다음 달 5일 IOC 평창 동계올림픽 조정위원들이 방한한다. 여러 시설을 둘러보는 등 올림픽 준비상황을 점검하게 된다. 나로서도 긴장될 수밖에 없다. 각별한 마음가짐으로 준비하려고 애쓰고 있다. 그래서 평창올림픽 전반에 관해 자세히 공부하고 있다. 리우올림픽 사례도 좋은 약이 될 것 같다. 리우는 시작 전 시설·치안 등 여러 불안요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완전히 불식시켰다. 교훈으로 삼을 만하다.”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국제 체육행사가 국위 선양용으로 활용되던 시절은 지나지 않았나. 그런 의미에서 평창 동계올림픽에 너무 많은 예산과 모든 국가적 역량을 쏟는 것은 과도하다는 느낌도 있는데.

“나는 생각이 다르다. 리우올림픽이 끝나면서 세계의 시선이 평창으로 쏠려있다. 당연히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 올림픽은 돈이나 물질로 평가받을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바로 올림픽 정신이다. 이를 위해 열심히 하는 것을 뭐라고 할 수 없다. 또 평창을 통해 대한민국이 더 알려지고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되는 건 좋은 것 아닌가.”



-10월 5일 통합 대한체육회장 첫 선거가 있다. 염두에 둔 후보가 있나. 앞서 생활체육과 엘리트체육이 통합되는 과정에서 잡음이 생기기도 했다. 어떻게 생각하나.

“여러 좋은 분이 나오신 것으로 알고 있다. 훌륭한 분이 뽑힐 것으로 믿는다. 생활체육과 엘리트체육은 각각의 장점이 있다. 어느 한쪽이 절대적이라고 할 수 없다. 서로가 보완하는 관계면 더 발전할 수 있다. 리우에서 느낀 것은 우리가 여러 종목에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다. 특정 종목에 매진하는 것이 아니라, 예컨대 필드 분야 등도 폭넓게 육성해야 한다는 걸 느꼈다. 입상하지 못하면 죄를 지은 듯한 이전과는 달리 여론도 바람직한 방향으로 바뀌고 있는 등 여건도 따라주고 있다.”



-후배 체육인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필드에서의 선수 생활이 끝이 아니고 그 이후의 삶도 적극적으로 도전하기를 부탁하고 싶다. 유승민도 IOC에 진출했다는 걸 보고 자극을 받았으면 좋겠다. 현역 때 아무리 주목을 받더라도 은퇴하면 대부분 그대로 사라지는 게 체육인들의 일반적 모습이었다. 무엇보다 공부를 해야 한다. 수학과 과학 같은 공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책을 통해 해당 분야의 전문 지식을 쌓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러 분야의 사람을 많이 만나 대화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공부다. 나는 국가대표팀 합숙 훈련을 할 때면 후배들에게 가능하면 타 종목 선수들과 많이 어울리라고 늘 말한다. 지식과 함께 시야를 넓히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IOC 선수위원이란

선수들 직접 투표로 선출, 임기 8년… 일반 위원과 동등한 업무·대우


2000년 시드니올림픽 때 신설된 IOC 선수위원은 올림픽에 참가한 각국 선수들의 직접 투표로 뽑는다. 선수 한 사람이 4명에게 표를 던질 수 있으며 역대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후보로 나설 수 있다. 전체 선수위원 수는 15명이며 임기는 8년이다. 이번 리우올림픽에서는 23명이 입후보해 유 위원과 함께 펜싱 브리타 하이데만(독일), 수영 다니엘 지우트라(헝가리), 육상 장대높이뛰기 옐레나 이신바에바(러시아)가 선발됐다. 유 위원이 두 번째로 표를 많이 얻었다. 현재 한국에는 삼성 이건희 회장이 IOC 위원이지만 건강 악화로 활동을 할 수 없어 사실상 그가 유일한 셈이다.

선수위원의 업무와 대우는 다른 IOC 위원과 같다. 올림픽 개최지 및 올림픽 종목 결정, 올림픽 발전제도 의결 과정 등 IOC 모든 사안과 의제 과정에 투표권을 행사한다. 별도의 급여는 없다. 세계 어디서나 국빈 대접을 받아 해외여행 시 입국 비자가 필요 없고 호텔 투숙 때는 해당국의 국기가 계양된다. 회의에 참석하면 승용차와 통역·안내 요원이 동반하며 승용차에는 IOC기가 달린다.

글=정진영 논설위원 jyjung@kmib.co.kr, 사진=곽경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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