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박창균] 원칙 실종된 한진해운 대응 기사의 사진
세계 7위의 해운 대기업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간 지도 벌써 한 달이 다 돼가고 있다. 안타깝고 딱한 일이지만 한진해운의 법정관리를 둘러싸고 우리 사회가 보인 반응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대중의 분노를 등에 엎고 원칙을 무시한 주장이 난무하고 있다. 한진해운 대주주 일가에 사재 출연을 통해 성의를 보이라는 사회적 압박이 전방위로 가해진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부실경영 책임을 이유로 청문회에 불려나간 종전의 대주주는 국회의원의 집요한 요구에 회사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바를 고민해 보겠다는 답변을 하고서야 자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미 부실화된 기업을 떠안은 후 나름 애를 쓰긴 했지만 사태를 되돌릴 수 없었던 또 다른 대주주는 도덕적 해이의 극치라는 정치권과 관료의 압박에 밀려 개인 재산에 더해 계열사까지 동원, 1000억원에 달하는 자금을 속죄의 표시로 내놓았다. 이렇게 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세계적 기업이 불과 몇 년 만에 파산의 언저리까지 도달한 사정이 딱하고 기가 막힌 노릇이지만, 부실경영의 책임이 있다는 이유로 개인 재산을 내놓으라고 압박하는 게 분명 정상적인 것은 아니다. 물론 필자도 그들의 무능에 어이가 없고 무책임에 분노를 느낀다. 그렇다 하더라도 마치 분풀이 하듯이 이런 식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무능한 경영으로 회사가 어려움에 처했다면 주주나 채권자가 책임자를 물러나게 하면 될 일이다.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감옥에 보내거나 벌금을 내라고 할 수 없지 않은가. 기업이 부실화되는 과정에서 대주주나 경영자가 부정이나 불법을 저질렀다면 이를 철저하게 밝혀 엄벌에 처해야 할 것임은 물론이다. 엄청난 규모의 혈세를 들여 사법제도를 운영하는 이유이다. 역설적이게도 부실기업 대주주에 대해 사재 출연을 요구하는 것은 진정으로 책임을 져야 할 자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의도치 않은 결과를 낳기도 한다. 불법이나 부정을 저질러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를 강하게 의심받던 대주주가 사재 출연을 약속하고 슬그머니 사법적 단죄를 피해간 예를 너무나 많이 봐오지 않았던가.

많은 경제사가들이 주식회사를 인류 최고의 발명품 중 하나로 꼽는다. 주식회사제도는 자신이 출자한 금액의 범위 내에서 책임을 지는 유한책임의 원칙을 보장하고 있다. 이 약속을 믿고 많은 꿈꾸는 모험가들이 실패 시 채무 노예로 전락할 수 있다는 걱정에서 벗어나 파괴적 혁신에 과감하게 뛰어들었고, 그 때문에 지금 인류가 누리는 경제적 번영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물론 소액 지배주주가 경영을 전횡하는 예가 빈번한 한국적 특수성을 감안해 도의적 차원에서 어려움에 처한 회사를 살리기 위해 일정한 기여를 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될 수는 있다. 하지만 사회적 제도를 대표하는 정치인이나 관료가 전면에 나서 이를 압박하는 것은 나가도 너무 나간 것이다. 법정관리에 들어가기 며칠 전에 자신이 보유한 주식을 팔아치운 행위가 괘씸하고, 법정관리 신청 전 회사의 우량자산을 빼돌린 혐의가 짙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사재 출연 압박이라는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대응할 게 아니라 민사적·형사적 수단을 총동원해 철저하게 응징하는 것이 원칙이다.

사족으로 한 가지만 더. 국적 해운사라는 말 좀 이상하지 않은가. 우리나라의 수출입 물품은 우리나라 회사가 운항하는 배로 실어 날라야 한다는 자기중심적 사고가 배어 있는 말처럼 들린다.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큰 규모의 외환보유액을 가지고 있는 나라에서 한 푼의 외화가 아쉬웠던 1970년대에 펼치던 국산품 애용운동의 빛바랜 표어가 연상되는 듯하여 영 마뜩지 않다.

박창균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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