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영 칼럼] 김영란법에 어깃장을 놓는 까닭 기사의 사진
오늘부터 이른바 김영란법이 시행된다. 연고주의와 온정주의에 기초한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청탁 및 접대 문화 관행이 크게 바뀔 것으로 보인다. 이 법의 또 다른 이름은 ‘더치페이법’이다. 김영란 전 대법관이 변호사들과의 사적 모임에서 “김영란법이 아니라 ‘더치페이법’으로 불러 달라”고 했다고 한다. 형식이 내용을 규정하듯, 이 법 발의자가 원하는 네이밍에서 ‘n분의 1’이란 핵심이 읽힌다.

대한민국의 전체적인 청렴 역량을 한 단계 올릴 수 있는 김영란법에 대한 헌사는 아무리 많아도 지나치지 않다. 국제기구 통계를 차용하지 않더라도 우리나라의 부정부패 순위가 여러 선진국들보다 앞선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이 법 도입이 당위로 인정받는 까닭이다.

기자들 입장에서도 반갑다. 관행인 듯 받아들였던 소소한 편익은 없어지겠지만 권력과 자본에 구겨졌던 자존심을 되살릴 수 있는 힘을 얻었다. 기사나 칼럼 수정 등 외부의 거듭된 부당한 요구는 ‘부정청탁’으로 간주돼 처벌된다. ‘언론자유’의 필요조건은 확보된 셈이다.

요란스럽다 할 정도로 법의 취지가 박수를 받는 한편에 걱정하는 목소리는 여전하다. 그동안 자주 지적됐던 법적 개념의 모호성과 대상의 지나친 광범위함에 따른 혼선은 정말 심각하다. ‘김영란도 모르는 김영란법’이라거나 ‘OX퀴즈법’이란 비아냥이 나올 정도다. 400여만명이 해당된다는 점에서 ‘과잉범죄화’는 불을 보듯 뻔하다.

현실성이 떨어지는 사례도 곳곳에 있다. 자신의 배우자가 직무와 관련해 금품을 받았을 경우 공직자 등이 의무적으로 신고해야 하고 이를 어기면 처벌하는 조항을 보자. 헤어질 각오를 하지 않고서야 과연 신고하는 부부가 있을까.

그러나 나는 정작 심각한 문제는 법 적용 과정에서의 부작용이 아니라 이를 알면서도 대처할 수 없게 만드는 ‘선과 악’의 이분법적 프레임에 있다고 본다. ‘대한민국을 투명한 나라로 만들기 위해 혼란이 있겠지만 우선 시행하고 보자’라는 논리에 조금이라도 이의를 제기하면, 그 순간 ‘악’이 된다. 적어도 ‘부정부패를 용인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의심받는다. ‘손대는 순간 원칙이 무너진다’는 근본주의적 발상은 교조적 위압감으로 무장해 보완적 비판을 찍어 누른다. 국민권익위원장은 물론 국무총리도 “2018년 12월 말로 예정된 김영란법 시행령 개정시한까지는 일단 집행하면서 보완하겠다”고 했다. 2년여 동안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밀어붙이겠다는 다짐이다. 대한민국 최고위 공직자들이 그 기간 동안의 사회적 비용은 무시하겠다는 뜻이다.

이대로 받아들여지면 후폭풍이 크다는 것은 알만한 사람은 안다. 이 법의 맹점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표현이 있다. ‘무조건 처음엔 걸리지 마라’는 것이다. 명확하지 않은 구석이 워낙 많은 탓에 범의(犯意)와 무관하게 범법자가 될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계고다. 김영란법을 설명하는 변호사 등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다. 이러다보니 ‘안 먹고 안 주고 안 받기’를 위한 법이 아예 ‘안 보기’로 굳어간다.

본질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법 제정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법의 근거인 ‘사회상규’를 명실상부하게 해석하면 된다. 공직자, 교수, 기자들을 대상에서 제외하자는 따위의 얘기가 결코 아니다. 누가 봐도 납득하기 어려운 내용과 대상을 따져보자는 것이다.

김영란법의 성패는 초기의 안착 여부에 달렸다. 그 수단은 법적 안정성 위협 요소를 가능한 빨리 제거해야 하고 이를 위한 논의를 활성화하는 것이다. 그런 절차를 병행하지 않고 밀어붙일 경우 최대의 피해자는 김영란법 그 자체일 것 같다.

정진영 논설위원 jy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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