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미국의 선택] 힐러리 ‘여유’  VS  ‘닥공’ 트럼프 기사의 사진
힐러리 클린턴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의 남편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가운데)과 딸 첼시(오른쪽 두 번째)가 26일(현지시간) 뉴욕 호프스트라대학에서 열린 1차 TV토론 방청석에 앉아 웃으며 대화하고 있다. AP뉴시스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와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는 90분 내내 불꽃 튀는 공방을 벌였다. 점잖게 시작했으나 곧 전투 모드로 돌입해 격렬한 말싸움을 이어갔다.

토론에 앞서 클린턴이 붉은색 정장 차림으로 무대 오른쪽에서 나왔고, 트럼프는 검은색 정장에 파란 넥타이를 매고 왼쪽에서 등장했다. 두 사람은 시각적으로도 강렬하게 대비됐다. 전통적으로 민주당은 파란색, 공화당은 빨간색을 상징색으로 쓴다. 두 사람이 상대 정당의 상징색 옷차림으로 나온 것이다.

TV토론에서 상대 정당의 색을 강조한 복장을 선택한 것이 처음은 아니다. 2012년 10월 대선후보 2차 토론에서 당시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는 붉은색 넥타이를 맸다. 밋 롬니 공화당 후보는 푸른 바탕에 흰색 줄무늬가 들어간 넥타이를 매고 나왔다.

클린턴과 트럼프는 한 치의 양보 없이 상대방을 반박했지만 클린턴의 경륜과 여유가 조금 더 돋보였다. 트럼프는 수차례 클린턴의 말을 자르고 들어가려다 사회자 레스터 홀트로부터 “지금은 클린턴의 발언 시간”이라며 제지당했다. 반면 클린턴은 트럼프의 잇단 말 가로채기에도 침착한 태도를 유지했다.

토론에선 인신공격성 발언이 난무했다. 첫 여성 대통령 후보에 대한 평가를 묻는 사회자의 질문에 트럼프는 “대통령이 되려면 강한 체력이 필요한데 (클린턴은) 스태미나도 없고 대통령에 어울리는 외모도 아니다”고 깎아내렸다. 클린턴의 병력을 문제 삼아 주도권을 빼앗으려는 의도였다.

이에 클린턴은 국무장관 재임 시절 112개국을 누비고 다녔던 사실을 거론하면서 “나만큼 하고 나서 스태미나를 지적하라”고 응수했다. 그는 이어 “트럼프는 여성을 돼지, 굼벵이, 개로 비하하는 발언을 일삼은 사람”이라고 비난했다.

트럼프는 클린턴의 건강 문제를 공격 재료로 꺼내들었지만 정작 본인이 코를 훌쩍이는 바람에 SNS에서 트럼프 건강이상설이 제기됐다. 그가 평소보다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하면서 중간에 코도 훌쩍이자 트위터에선 “휴지를 줘야겠다” “숨겨둔 병이 있는 것 아니냐”고 비아냥대는 글이 쏟아졌다.

워싱턴포스트(WP)는 전체적으로 클린턴이 공격하고 트럼프가 방어하는 분위기였다고 평가했다. WP는 “클린턴이 매우 민감한 트럼프의 피부를 바늘로 콕콕 찔렀다”고 표현했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도 “클린턴이 트럼프를 약 올렸고, 트럼프는 냉정함을 잃었다”고 논평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정치 칼럼니스트 질 에이브럼슨은 1980년 로널드 레이건 공화당 후보와 지미 카터 민주당 후보의 TV토론 때 레이건이 “또 시작이네”라는 한마디로 카터를 누른 것 같은 결정적인 순간은 없었다고 냉정하게 평가했다.

CNN방송이 집계한 두 후보의 발언 시간은 총 90분 가운데 클린턴 37분, 트럼프 42분이었다. 나머지 11분은 토론 진행자 홀트의 발언 시간이었다. 토론 중 온라인에서는 트럼프가 더 많이 언급됐다. 페이스북과 트위터 대화에서 트럼프는 각각 79%, 62%의 점유율을 보였다. 물론 긍정적인 언급과 부정적인 언급을 모두 포함한 수치다.

클린턴은 토론이 끝난 뒤 무대로 올라온 남편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딸 첼시의 손을 잡고 활짝 웃으며 승자의 여유를 보였다. 트럼프 역시 토론을 지켜본 아내 멜라니아와 딸 이방카 등 가족으로부터 환대를 받았다.

불확실성을 극도로 싫어하는 글로벌 시장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인물인 트럼프가 토론에서 밀리는 모습을 보이자 반색했다. CNBC방송은 “시장은 클린턴을 토론의 승자로 선언했다”고 전했다. 멕시코 페소화 가치가 오르고 아시아 주요국 증시가 상승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쌓아 이민을 막겠다고 공언한 트럼프의 지지율 상승에 최근 추락을 거듭했던 페소화 가치는 이날 2% 가까이 올랐다. 한국 중국 일본의 주가지수도 클린턴의 우세에 안도하며 상승세로 마감했다. 대표적인 안전자산인 금과 엔화 가치는 떨어졌고 위험자산에 속하는 원화는 강세를 나타냈다.

☞ 美 대선 기사 모음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천지우 기자

swchun@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