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신창호] 이러다 친구마저 잃는 건 아닌지 기사의 사진
‘3·5·10.’

이 숫자가 이렇게 우리 사회를 바꿔놓을 줄 몰랐다. 김영란법, 그러니까 정확하게는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얘기다. 3만원을 초과하는 식사 대접, 5만원을 초과하는 선물, 10만원을 넘는 축·조의금을 받는 공직자와 언론 관계자, 사립 교육기관 관계자는 모두 처벌받는다.

관가와 언론기관, 학교 주변 식당들의 점심·저녁 값이 바뀌고, 비싼 메뉴는 찾는 손님이 없어 폐기되고 있다. 온갖 기관에서 김영란법 저촉 사례에 대한 강연이 행해지고, 뭐는 되고 뭐는 안 되는지 곰곰 고민하는 세태가 생겨났다.

선임이, 연장자가, 초청자가 밥값을 내는 접대문화는 드라마틱하게 바뀔 모양이다. 이제 친구를 만나도, 친지를 만나도 계산서 들고 “내가 낼게”를 서로 외치는 식당 풍경은 보기 힘들어질 것이다.

‘더치페이(Dutch Pay).’ 18세기 네덜란드 상인들은 물 한 잔도 다른 사람이 마신 건 공짜로 주지 않았다. 내 것만 지불하고, 남의 것은 안 내는 방식의 계산법은 전 유럽의 조롱을 받았다. 아직도 네덜란드인들은 ‘더치’란 단어를 싫어한다. 누군가로부터 야유를 받거나 경멸받는 걸로 여긴다.

2008년 미국 플로리다주의 주도 탤러해시에서 1년간 해외연수를 보내며 굉장히 재미있는 경험을 했다. 플로리다주립대 언론대학원 학과장이던 스티븐 맥도웰 교수는 초청교수 자격으로 온 외부인사들에게 일주일에 한 번씩 공식적인 점심을 샀다. 대학 안에서 가장 비싼 식당에서 말이다.

그런데 그는 평소 우연히 마주쳐 점심을 같이 먹거나 커피를 마시러 가면 더치페이로 180도 태도를 바꿨다. 어느 날 그에게 “좀 이해가 안 된다”고 물었다. 어떤 식사는 비싼 돈을 내고 사주면서 3달러짜리 샌드위치는 왜 각자 지불하는지가 궁금해서였다. “공식적인 식사는 여러분에게 우리 대학을 홍보하는 자리이고, 샌드위치는 그냥 점심 먹으러 가다 만난 사이일 뿐이니까요.”

미국에서도 유럽에서도 공공기관이 특정 당사자를 대상으로 접대를 한다. 그렇다고 그 접대가 사회상규를 벗어날 정도로 호화롭지 않다. 스스로를 알리고 상대방에게 좋은 인상을 심으려는 행위는 인간의 ‘사회적 본능’에 속한다. 선진국의 어떤 법도 이런 행위를 ‘도덕적 일탈’로 여기지 않는다. 돈으로, 향응으로 상대를 매수해 자신의 이익을 관철하는 불법은 따로 의율(擬律)할 형법이 있다. 그 형법에 ‘범죄 행위’로 규정된 게 아니면 다 허용된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어떤가. 뇌물수수에 관한 법률이 있음에도 따로 또 법을 만들었다. 지극히 개인적·사적 관계에서 일어나는 일마저 법이 끼어들겠다는 발상이다. 친구의 직업이 공직자라 해서, 선배의 직업이 기자라고 해서, 동창의 직업이 사립대학 교수라 해서 3·5·10을 절대 넘어선 안 된다고 못 박았다. 그걸 넘으면 반드시 수사기관에 신고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자리를 보고 신고하면 두둑한 포상금을 받을 수도 있다.

밥 사주는 친구도, 얻어먹는 친구도 서로 눈치를 봐야 하고, 감시해야 할 처지가 된 셈이다. 이미 그런 사이는 결코 친구가 아니다. 30년이 넘는 친구 사이가 법 하나 때문에 다 갈라지고, 선후배, 학교 동창 사이도 틀어지게 됐다. 눈치 보느니 아예 안 만나는 게 상책이다.

식당에 앉아서 먼저 자신의 직업을 밝혀야 하는 시대. 조금만 이상하면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와야 하는 세상. 3·5·10을 넘으면 자진 신고해야 하는 사회.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나오는 세상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김영란법이 ‘빅브라더(Big Brother)’라도 되나.

신창호 스포츠레저팀장 proco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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