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명호] 가을비 기사의 사진
난센스 퀴즈 하나. 요즘의 사계절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땡∼. 아니다. 정답은 여름, 아주 여름, 겨울, 아주 겨울이란다. 기후가 점차 바뀌면서 봄, 가을이 아주 짧아진 것을 빗댄 농담이다. 정말 그렇다. 지난봄, 오월의 화창한 날씨를 즐긴 게 며칠이나 됐나. ‘아 정말 좋구나’ 하는 느낌이 채 가시기도 전에 기록적인 폭염이 오지 않았나. 어제 출근길에 밝은 베이지색 반코트를 입은 청년을 봤다. 늦더위가 가시고 처음으로 본 일상의 반코트 차림이었다. 반가웠다. 전날 비로 가로수길은 군데군데 젖어 있었고, 하늘은 또 한번 가을비를 보내줄 것처럼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늦여름의 끝자락을 밀어낸 그야말로 가을비다. 진짜 가을이다. ‘요즘 사계절’에 따르면 오는 가 했는데 성큼 가버릴 짧은 시간이다.

‘대체로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래서, 가을날 비는 처량하게 내리고….’ 국어교과서에 실렸던 안톤 슈낙의 산문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에 나오는 대목이다. ‘정원 한쪽 구석에서 발견된 작은 새의 시체 위에 초추(初秋)의 양광(陽光)이 떨어질 때’라는 표현도 있다. 가을비 하면 떠오르는 게 처량하다, 청승맞다 같은 느낌이다. 요맘때면 늘 라디오 음악프로그램에서 자주 나오는 가수 고(故) 최헌의 ‘가을비 우산 속’의 가사에도 그리움, 슬픔, 미련, 나 혼자 등의 청승맞은 단어들이 나온다.

그런가 하면 가을비를 떡비라고 하는 우리말도 있다. 가을에 내리는 비를 핑계로 가족들이 모여 떡을 해먹으며 여름철 농사로 고생한 이야기나 추수할 즐거움을 만끽하는 여유를 갖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풍요롭다. 가을비 뒤의 양광, 특히 늦은 오후의 양광은 평화로움과 고즈넉함도 준다. 그러니 ‘아주 겨울’이 오기 전에 잠깐 스쳐 지나갈 가을을 맘껏 즐기시라.

사족. 아주 여름, 아주 겨울에서 ‘아주’라는 표현은 임의로 변형한 것이다. 원래는 바로 뒤 형용사를 강조하는 비속어 부사인데, 비속어라 글로 옮길 수 없다. 뭔지 잘 모르겠으면 옆 사람에게 물어보면 된다.

김명호 수석논설위원, 그래픽=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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