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박정태] ‘낙하산 정부’가 개혁 논할 자격 있나 기사의 사진
노동계의 릴레이 파업으로 추투(秋鬪)가 본격화하고 있다. 3일째 지속된 철도노조 파업은 합법이냐 불법이냐를 놓고 정부와 노조가 옥신각신한다. 종국에는 법원이 판단할 문제지만 이미 파업에 참가한 철도노조 간부들이 대규모 직위해제되면서 노정(勞政) 갈등은 파국으로 치닫는 분위기다.

파업의 핵심 쟁점은 성과연봉제다. 여론은 대체적으로 싸늘하다. 노조가 도입 자체를 무조건 거부하고 있어서다. 물론 성과연봉제가 만능은 아니다. 금융·공공부문에선 지나친 성과주의에 따른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 해도 공정한 평가체계를 토대로 한 성과연봉제라면 제도 도입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는 점도 분명하다. 이 같은 여론을 등에 업고 정부는 ‘귀족노조의 밥그릇 지키기’라는 프레임을 씌워 연일 노조를 매도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부는 아무런 잘못이 없는가. 이번 파업의 빌미는 정부가 제공했다는 점에서 책임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 올 1월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 지침’을 마련해 성과연봉제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그 결과 공공기관 120곳이 도입을 완료했으나 그중 54곳(45%)이 노조 동의 없이 이사회 의결만으로 강행해 위법성 논란이 제기돼 왔다.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는 경우 노조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근로기준법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점에서다.

정부의 선전전(戰) 또한 무책임하다. 정부는 직무와 성과에 기반한 임금체계 개편이 지난해 9·15 노사정 합의사항이라고 주장하나 이건 국민을 호도하는 거다. 당시 노사정 합의문에는 ‘임금체계 개편 방향은 직무, 숙련 등을 기준으로 해 노사 자율로 추진한다’고 돼 있다. 자율적 개편을 촉진하기 위해 임금체계 모델 및 공정한 평가기준도 개발하기로 했다. 이 합의 내용을 깬 건 바로 정부다.

그럼에도 이미 도입된 성과연봉제는 ‘이익분쟁’(근로조건의 결정을 둘러싼 분쟁)이 아니라 ‘권리분쟁’(단체협약·취업규칙의 해석·적용·준수를 둘러싼 분쟁)이어서 법원에서 해결할 문제라고 강변한다. 해괴한 소리다. 무턱대고 도입해놓고 사법부 판단을 받아보라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다. 정부의 초강경 자세로 볼 때 노정 간 대화테이블 복귀는 요원하다. 파업을 계속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다. 소모적 분쟁을 끝내려면 노조가 이사회의 성과연봉제 도입이 원천무효임을 주장하는 소송을 제기해 법원 판단을 받는 수밖에 없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게 유일한 해법이다. 노동계가 다음 달 소송을 낼 방침이라니 파업은 이쯤에서 접고 법적 대응에 몰입하는 게 낫다.

정부부터 순리를 따라야 한다. 뒤로는 낙하산 인사를 자행하면서 앞에서는 노동·금융개혁을 부르짖는 것 또한 어불성설이다. 박근혜정부 이후 금융권 낙하산 인사만 200명이 넘는다고 한다. 현직만 볼 때 금융공공기관 27곳 임원 255명 중 97명(약 40%)이 낙하산이라는 분석도 나왔다(국민의당 채이배 의원 자료). 그래놓고 직원들에게는 성과를 묻고 개혁을 하겠다고 하니 누가 납득할 수 있겠는가. 더욱이 ‘낙하산 철폐’는 박 대통령의 대선공약 아니었던가.

금융권은 앞으로도 낙하산 투하로 얼룩질 지경이다. 오늘은 ‘금융계의 우병우’라 불리는 정찬우 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주주총회를 통해 한국거래소 새 이사장으로 정식 입성한다. 앞서 금융 경력이 전무한 청와대 전 연설기록비서관도 한국증권금융에 둥지를 틀었다. 내년까지 기업은행 등 금융기관장 물갈이를 통한 낙하산 인사설도 파다하다. 정권 말 마지막 보은인사 잔치가 곳곳에서 열린다는 얘기다. 이런 낙하산 고질병은 그대로 둔 채 정부가 노동·금융개혁을 위한 수술을 하겠다니 지나가는 소도 웃는 것이다.

박정태 논설위원 jt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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